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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충우 칼럼] 영조가 살아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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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8.31  15: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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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술가 통신일보 고문 / 한재 신충우  
 
“납작한 냄비에 잘게 썬 김치를 잔뜩 담는다. 여기에 길게 썬 메밀묵과 잘게 썬 돼지고기, 깻잎, 들깻가루, 김가루, 팽이버섯 따위를 듬뿍 얹고 들기름을 뿌려 불에 얹고 약한 불에 익혀가며 먹는다.

구수한 메밀묵과 시큼한 김치, 기름진 돼지고기가 절묘하게 어울린다. 들깻가루와 들기름이 고소함을 더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묵이 뭉그러지고 김치와 어울리며 혼연일체의 경지에 오르는데 여기에 조밥을 비벼 먹으면 뱃속이 진정으로 태평하고 행복해진다.” 이 음식이 역사 속의 태평초다.

태평추에서 연유했다. 샤브샤브와 비슷하다. 메밀묵에 돼지고기, 미나리, 지단채, 김 등을 넣고 은근한 불에 끓이면서 먹는 음식이다. 태평초, 태평탕 등으로 불리는 요리로서 ´돼지묵전골´의 일종이다. 경북 지방에서는 별식으로 매우 유명한데 이 지역의 일설에 따르면 궁중음식인 탕평채가 경북에 전해지면서 서민들이 먹는 태평추가 됐다고 한다. 태평추는 메밀묵의 부드럽게 씹히는 감촉이 채소와 어우러져 칼칼하고 개운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메밀에 들어있는 루틴(rutin)은 혈압을 내리는 일을 하기보다는 혈관의 지나친 투과성을 억제하고 모세혈관을 강화시켜 뇌출혈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한방에서 메밀은 이질과 대하증을 멎게 하고 해독, 창종 제거, 위장염, 대장염 등에 유효할 뿐만 아니라 기억력을 좋게 해주는 건강식품으로도 알려져 왔으며 다른 곡류에 비해 수용성 식이섬유 함량이 높아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영양소의 흡수를 천천히 하게 하므로 혈당을 낮추어 주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메밀은 곡류에서 부족 되기 쉬운 필수아미노산과 비타민 B1, B2와 철분이 많이 들어 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에 멋들어지게 들어선 한옥 한 채가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연못 가운데 돌로 단을 쌓아 만든 인공 섬이 있고 그 섬에 육각형 정자가 서 있다. 현판에 봉도각(蓬島閣)이라고 쓰여 있다. 안내판은 “봉도란 신선이 산다는 봉래(蓬萊)란 의미”로 “옛 순흥도호부 청사 뒤뜰에 영조 30(1754)년 부사 조덕상이 논을 파서 연못을 만들고 그 가운데 인공섬을 쌓고 정자를 세웠다”고 설명한다.

봉도각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음식이 이 지역에 전해온다. 태평초다. 이 음식을 하는 식당이 봉도각 바로 옆에 있다. 원조순흥묵집 주인 민봉순 할머니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음식인데 화로에 바글바글 끓여가며 태평하게 먹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했다.

원래는 메밀묵으로 이름난 식당이다. 메밀묵의 진수를 맛보려면 묵조밥을 시켜야 한다. 길게 썬 메밀묵을 멸치 국물에 말고 참깨, 김, 잘게 썬 청양초, 김치, 참기름을 뿌려 사발에 낸다. 조밥이 곁들여 나온다. 메밀묵이 입술에서 미끄러질 듯 매끄럽다. 씹을 틈도 없이 부드러운데 구수한 메밀향이 코로 올라온다. 참기름 냄새와 잘 어울린다. 멸치 국물이 심심한 듯하지만 끝까지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태평초 1만5,000·2만원, 묵조밥 5,000원, 공기밥 1,000원. 메밀파전(5,000원), 칼국수(5,000원), 조를 넣어 샛노란 동동주(5,000원)도 투박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필자는 식당에서 만난 길손들과 태평초에 동동주를 나눠 마시며 탕평채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탕평채는 초나물에 녹두묵을 썰어 넣고 섞은 음식이다. 묵청포라고도 한다.『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탕평채라는 음식명은 탕평책의 경륜을 펴는 자리에서 청포에 채소를 섞어 무친 음식이 나왔으므로 탕평채라고 했다.

녹두묵은 매끈한 감촉이 있어 주안상에 꼭 오르는 음식이다. 녹두묵 가장자리의 더껑이를 얇게 베어 내고 길이 4∼5 cm, 나비 1cm, 두께 0.5cm 정도로 썰고 숙주는 머리와 꼬리를 떼고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데쳐 낸다. 미나리와 물쑥도 다듬어 씻어서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치고 데쳐 내고 쇠고기는 가늘게 채썰어 양념장에 쟁인다. 달걀은 황백 지단을 갈라서 부쳐 가늘게 채썰고 김은 구워서 가늘게 채썰거나 잘게 부순다.

이와 같이 준비가 끝나면 번철에 기름을 약간 두르고 뜨거워지면 양념한 쇠고기를 넣고 바싹 볶는다. 물쑥과 미나리는 물기를 짜서 3~4cm 길이로 썬다. 넓은 그릇에 묵·볶은고기·숙주·미나리·물쑥을 함께 넣고 초간장으로 고루 무쳐 접시에 담고 달걀지단·김채·실고추 등을 웃기로 얹는다. 미리 무쳐 놓으면 묵이 풀어져 맛이 좋지 않다. 초간장은 간장·식초·설탕·깨소금·참기름을 섞어 만든다.

탕평채를 유래시킨 탕평책은 조선 후기 영조가 당쟁을 해소하기 위해 당파간의 정치세력에 균형을 꾀한 불편부당의 정책이다. 탕평(蕩平)이라는 말은『서경』<홍범조>의 “無偏無黨王道蕩蕩 無黨無偏王道平平(무편무당왕도탕탕 무당무편왕도평평)”이라는 글에서 유래한 말로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숙종이 탕평책을 처음 시행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아 환국이 자주 발생했다.

신임옥사의 와중에서 왕위에 올라 당쟁의 폐단을 뼈저리게 겪은 영조는 1724년 즉위하자 당쟁의 폐단을 지적하고 탕평의 필요를 역설하는 교서를 내려 탕평정책의 의지를 밝혔다. 즉위 6년에는 탕평인사를 단행했으며 18(1742)년에는 성균관에 탕평비를 건립, 유생들에게 군자지도(君子之道)를 체득해갈 것을 권장했다. 비문의 원문은 “周而弗比, 乃君子之公, 心比而弗周, 寔小人之私意”이다. 해석하면 ‘두루 사랑하고 편당하지 않는 것은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며 편당하고 두루 사랑하지 않는 것은 소인의 사사로운 생각’이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영조의 탕평책에 의한 화해기운 조성에도 불구하고 뿌리깊은 당파의 대립은 그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영조를 이은 정조도 탕평책을 계승, 그의 거실을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이라 하고 노론·소론뿐만 아니라 출신을 가리지 않고 서얼도 글 잘하는 사람을 등용했으며 남인 출신을 영의정에 앉히는 등 적극적으로 탕평책을 써서 많은 효과를 거두었다.

조선은 선조부터 정조까지 250년간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 대북과 소북, 노론과 소론, 청남과 탁남, 시파와 벽파 등 사색 당쟁으로 골치를 앓았다. 영조는 드디어 아들까지 죽인 당쟁을 바로 잡으려고 당파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하며 그 대책으로 요리 한가지를 제의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탕평채이다. 김은 검은색으로 북인(北人), 미나리는 푸른색으로 동인(東人), 쇠고기는 붉은색으로 남인(南人), 그리고 주재료인 청포는 흰색으로 서인(西人)을 상징했다. 탕평책을 실시한다고 하면서도 지배계파가 주도권을 행사한 셈이다.

과거에 당쟁을 일삼던 못난 선비들과 같이 오늘날에도 끝없이 대립하고 있는 불쌍한 중생들이 함께 어울려 먹게 할 수 있는 탕평채는 없는가? 영조와 정조가 살아 있다면 남북의 체제대립, 영호남의 지역감정, 보수와 진보의 이념대립, 여야의 끝없는 정쟁을 어떻게 탕평할까? 상기에 언급된 탕평책을 상황에 맞게 내놓겠지만 남북 문제외에는 선심성 인사나 개발공약보다는 구세대적인 탕평음식이나 탕평비가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국회와 영호남의 주요 지점에 탕평비를 세우고 탕평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는 행사를 자주 갖게 되면 서로에게 마음이 조금은 열릴 것이다. 현대적인 차원에서는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을 검토해 볼 수 있으나 이도 양쪽 거주민의 마음이 움직여 주어야 성공할 수 있다.

자기만, 자기 지역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상대에 대한 관용과 이해, 포용과 배려가 있어야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이제는 지역감정을 만들고 확대시킨 장본인들이 모두 죽었으므로 해결책을 찾아 볼만 한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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