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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의 공동화(空洞化)가속“어린아이의 울음소리도 멈췄다”
사람 사는 온기(溫氣)는 오직 ‘다문화가정’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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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5.07  16: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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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황... 경북 예천의 예(例)

예천은 한때 경상북도의 요충지였다. 안동, 상주, 문경, 영주, 점천등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경상도 북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들이 예천에 집결, 어마어마한 규모의 5일장이서기도 했던 곳이다.
예천이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는 주민수가 16만 5천여명의 달하기도 했다. 그러던 예천군이 오늘날에는 거주민수가 3만 8천여명선에 머무는 아주 ‘작은 마을’로 전락해 버렸다.

현재 예천에는 온통 노인들밖에 살지 않는다. 60대 중반이나 70대 초.중반 까지는 ‘젊은이’취급을 받아야만 한다.
이곳 예천에서는 한해 720여명의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 이 때문에 장례식장이 불과 1-2년 사이에 4개로 늘어났다.

720명의 노인이 세상을 떠나는 반면 이곳에서 태어나는 신생아수는 30명 정도에 머물고 있다. 숫자상으로만 보더라도 매년 예천 거주민수가 600-700명씩 줄어들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예천지역을 지탱하고 있는 인적 자원, 다시 말해 가용 활동자의 태반 이상이 ‘다문화 가정’이다. 형태를 보면 남편들은 태생이 대한민국 사람이고 부인들은 외국 사람들이다.

이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결국 혼혈아인 셈이다.
외국 여인들이 예천 남자에게 시집을 와서 어린아이를 낳은 것이다. 외국 여인 중, 국적별로는 중국 사람이 가장 많다. 연변 출신 한인뿐만 아니라 순수한 중국 혈통도 의외로 많은 편이다.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등 동남아 출신의 여인들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의외로 일본인 출신이 적지 않은데 이는 문선명을 교주로 하는 통일계의 영향 때문이다.

좁은 예천지역에만 30여명의 일본 출신들이 동거동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명리에 살고 있는 왕진엄마 조카(34)는 호명리 총각과 결혼하여 현재 7살짜리 딸과 5살짜리 딸, 3살짜리 딸을 두고 있다. 딸만 셋이다. 이 조카는 현재 예천주민들 가운데 중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희망자들에게 중국어를 가리키고 있다.

얼마 전에는 자그마한 무역회사를 차려 중국으로부터 생활필수품과 마시는 차를 수입해 판매중이다.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등 출신여인들은 대부분 농촌 일에 전념하면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대한민국과 자신들의 출생국과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괴리현상과 심적 고통이다.

자신들이야 이러한 어려움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제2세인 그들의 자녀들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겪는 고통만큼은 차마 볼 수가 없다고 했다.

   
■ 한해 4000여명의 여성결혼이민자, 평균 2-3명 자녀 낳아

앞에서 살펴본 오늘날의 농어촌 풍경은 비단 경상북도 예천만의 경우가 아니다. 서울특별시를 비롯하여 부산광역시, 광주, 대구, 대전, 인천, 수원, 강릉등등 우리 귀에 익숙한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면 대한민국 땅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군소 농어촌 지역의 모습은 예천과 전혀 다르지 않을게 불 보듯 뻔하다.

어촌에는 고기를 잡을 젊은이가 없고, 농촌에는 농사지을 젊은이가 없다. 때문에 폐가(廢家)가 속출 하고 있다.
경북 예천의 경우 지보라는 곳이 있다. 지보에는 중. 고등학교가 있는데, 중학생 졸업자 50명이 몽땅 고등학교로 올라가야지만 지보고등학교는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보 중학교 50명 졸업생 가운데 3명이 안동등지의 다른 고등학교로 옮겼기 때문에 최저 고등학교 학생수인 50명을 채우지 못해 폐교 위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고민하던 주민들과 학교 측이 전전긍긍한 끝에 타 지역에서 학생 3명을 억지로 유치(?)하여 올 한 해 동안 학교를 유지하기로 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것이 오늘날의 농어촌 지역 현실이다. 모르긴 해도 이런 현실은 전국 곳곳에서 이 시간에도 진행되고 있을 듯싶다. 지난 2007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시집을 와서 정착한 여성 결혼 이민자는 총 3,028명이다. 국적별로는 중국 1,235명(41%), 베트남 677명(22%), 필리핀 516(17%), 일본 389(13%)순이다.

여성이민자가 몇 년도부터 우리나라에 정착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 하지는 않으나, 그동안 이들 여성이민자들이 국내에서 낳은 신생아수는 5만8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가임(可姙)농어촌 여성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 나간 뒤 이들 외국인 여성들이 공동화 되어가는 농어촌 지역에 자리를 잡고 낳은 아이들의 숫자가 이만큼 많은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뚜렷한 양상을 보일 전망이다. 농어촌에서 오늘날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바로 그 아이들은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아이라고 보아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어떤 아이는 우리와 피부가 다소 다를 수도 있고 머리카락과 눈 색깔이 다를 수도 있다. 이 아이들이 머지않아 이 나라를 짊어질 수도 있다고 본다면 그들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분명히 달라져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할 대목이 있는데 그것은 여성 결혼 이민자 가운데 대한민국 국적 취급자는 32%에 불과하며 나머지 68%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채 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점을 주목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상황에 따라서 도망가려고 하는 이유에서 일까? 국적 취득 절차가 까다롭고 번거롭기 때문일까? 그 정확한 해답은 역시 모른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른 문화에서 오는 어려움과 자녀들의 적응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겠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 국수주의적 우월감등 제거해야할 사항 많아

1960년부터 1975까지 이어졌던 월남전과 수년간의 걸친 전쟁 복구 작업에 수많은 한국인들이 참여했다. ‘영원한 해병’은 ‘따이한’명성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건설 노무자등은 월남에 대한인(大韓人)의 기개를 드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씨(?)’가 베트남에 심어졌다. 수많은 한국인 2세들이 그곳에서 태어난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메콩강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나기도 했고, 또 어떤 아이들은 ‘쾌락의 산물’로 태어나기도 했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아이들은 아직까지도 ‘한국인의 피’로써 제대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인의 아들.딸 임이 분명함에도 이들 제2세들은 고통과 슬픔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이민사(史)에서도 드러난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이국땅 미국으로 향했던 이민1세대의 자손들이 미국 현지에서 태어났고 이어 그들의 2세,3세가 잇따라 미국 땅 에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한국인의 혈통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또는 국적을 미국인으로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으로써의 법적.제도적 대우를 못 받는다면 그 슬픔은 얼마나 클까?

지금 이 시간 우리나라에 시집을 와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한국인 혈통의 자녀를 낳고 있는 외국 여성들에게 있어서도 그 심정은 우리와 똑같을 것이다.

우리는 과연 남의 나라 사람들 앞에서 어깨를 으쓱일 만큼 그렇게 우월감이 넘치는 사람들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릇된 생각으로 보인다.
파란 눈을 가졌든, 까만 머리를 가졌든, 황색피부를 가졌든, 그러한 것들은 이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구촌이 하나로 통하게 된 것이 어제 오늘일이 아님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08년 말 현재 국제결혼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숫자는 ▲만6세 미만 3만3천140명 ▲만7세-12세가 1만8천691명 ▲만13세-15세가 3천672명 ▲만16세-만18세가 2천504명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서울 영등포가 3만9천793명, 구로가 2만8천818명, 경기도의 경우 안산 3만6천387명, 수원 2만5천019명, 인천의 경우는 남동 1만3천941명, 충남은 천안1만217명, 경남김해는 1만2천325명으로 나타났다.

전국 일원에 걸쳐 거의 고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도시 주변에서 생활하는 ‘다문화 가정’이 이만큼 많으며, 골고루 분포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농어촌과 대조를 보이는 현상이다. 대도시 주변에서의 ‘다문화 가정’위치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농어촌 지역에서는 이들 ‘다문화 가정’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 문제점 및 대책

정부는 ‘다문화 가정’이 급속적으로 많아지고 이들의 사회적 비중이 크게 높아짐에 따라 이들에 대한 관심을 계속적으로 높여가고 있다. 문화적 괴리의 폭을 좁히기 위한 언어 교육을 확대 실시하는 일 이라 던지,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에게 교육비와 출산장려금등을 지급하는 것들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겪는 고통가운데 ‘언어소통’, ‘교육내용의 이해부족’, ‘학교 동료들 간의 따가운 시선과 따돌림’, ‘외모적 차이에서 오는 대인기피증’, ‘역사인식의 희박성’등등이 대표적 문제들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다문화 가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의 하나이며, 제2세들에게 아빠.엄마의 나라를 이해시키는데 그 부모들은 세심한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이제 우리들도 세계인의 한사람으로써 다문화 가족들을 품에 안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지사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문제와 관련하여 대학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전문화 교육, 사회적응 훈련 등 폭넓은 대책이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하며 취업문제 까지도 정부가 고민 해주는 배려가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다문화 가정’과 그 가족들은 결코 우리의 먼 이웃이 아니다. 바로 우리와 똑같은 형제요, 자매이며, 미래를 열어가는 ‘동반자’임을 우리 모두는 깊이 인식해야만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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