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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충우 칼럼] 동양사상이 나서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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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10.15  16: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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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술가 통신일보 고문 / 한재 신충우  
 
자연은 생명이다. 그 생명들이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삶의 소리를 낸다. 그 화음이 자연의 소리이다. 청아하고 아름답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에서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쪽은 영동, 서쪽은 영서, 남쪽을 영남이라 일컬었고 이 세 곳의 정기를 모은 곳이 바로 일월산이라 했다.” 일원산은 태백산맥에 속해 있다. 경북 영양군 청계면과 일원면에 걸쳐있으며 해발 1,219m의 경상북도 최고봉이다. 일원산(日月山) 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와 달이 뜨는 모습을 가장 빨리 볼 수 산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월산 숲속을 거닐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있어 오솔길을 산책하는 것인가, 아니면 오솔길이 있어 내가 산책하는 것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계의 기본질서에 대한 의문이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자연.
선후만이 바뀐 단순한 이들 관계는
우리가 자연계를 보는 기본적인 틀이다.
자연이 있어 인간이 존재하는가,
인간이 있어 자연이 존재하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전자는 모자의 관계이고
후자는 종속 또는 소유의 관계이다.
동양은 전자에 기준을 두고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며
서양은 후자에 기준을 두고
자연과 인간을 독립적으로 본다.
이에 따라
서양은 자연을 도전과 정복의 대상으로
동양은 자연을 공생공존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물질문명을 추구해온 서구 사상이
정신문화를 추구해온 동양 사상을 제치고
산업화를 거쳐 도시화를 추진하면서
인류의 대재앙 지구 온난화에 직면해 있다.
10분 빨리 가려다 60년 앞서 가는
어리석은 운전자의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서양의 사상을 대변하는 기독교정신은
창조사상이다.

   
 
  ▲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는 유럽의 환경운동가들 <출처 ; AP/뉴시스 2009-10-04>  
 

도식적으로 보면 지구 생태위기→ 지구 온난화→ 이산화탄소 대량 방출→ 에너지 확보전쟁→ 산업혁명→ 기계론적 자연관→ 기독교 인간중심적 자연관 → 유대교 창조사상으로 귀결된다. 원인이 파악됐으므로 처방은 간단하다. 그곳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공존의식을 인식하는 것이다.

공생공존의 동양사상이 나서야 할 때다.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동양사상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동양의 사상은 도가의 무위자연, 불교의 연기설, 그리고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도덕적 사회규범의 기본적 입장을 고수하는 유가의 천인합일사상(天人合一思想)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류가 공룡처럼 멸종한 후에도 자연을 도전과 정복으로 대상으로만 생각할 것인가? 자연에 인류의 미래가 있다. 생태 위기에 대한 공동체적 대안으로 △ 세계화→ 지역화, △ 집중화→ 분권화, △ 획일화→ 다양화, △ 거대화→ 분산화 등이 생태 연구자들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이 바탕에 동양사상이 있다.

동서양은 외모만큼이나 사고의 틀이 다르다. 서양인들은 동양인과 달리 보는 것을 중시, 보는 것(See)을 이해하는 것(Understand)으로 생각한다. I See(나는 본다)와 I Understand(나는 이해한다)가 같다는 등식이다. 이에 따라 원근법, 투시법이 발달했다. 일정한 시점에서 본 물체와 공간을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이 멀고 가까움을 느낄 수 있도록 평면 위에 표현하는 방법이 원근법이다. 기독교의 성서를 형상화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원근법이 잘 반영된 대표적인 그림이다.

반대로 동양인은 역투시법, 역원근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자연스러운 시각과는 달리 배경의 입체를 전경(前景)의 입체보다 크게 그리거나 화면의 중심을 향해 집중하여야 할 선을 반대로 확산해 그리는 방법이 역원근법이다. 조감도를 그리는 방법의 하나이다. 이런 원리가 가장 잘 반영된 것이 불교의 인드라망(하늘의 그물)이다. 이것은 제석천이 사는 도리천 세계의 하늘을 뒤덮은 그물을 지칭한 것이다. 모든 그물의 매듭에는 구슬이 달려 있고 그 구슬 모두에는 사바세계 전체가 비추어진다고 한다. 그물 매듭의 구슬이 세계 전체를 비출 수 있는 이유는 세계의 모두가 하나의 그물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즉(卽)하고 의(依)해 부분이 전체이고 전체가 부분인 세계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단 도리천이 아니더라도 세포 단위의 유전자가 전체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으며 부분과 전체가 즉하고 의해 이는 인간의 신체가 인드라망이며 원인과 결과가 무한히 연속돼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가 별개일 수 없는 이 세계가 또한 인드라망에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다.

서양은 사물을 관찰자 입장에서 보고 동양은 사물을 대상자 입장에서 본다. 부정의문문(否定疑問文)에 대한 답변이 대표적인 예다. 서양은 자기입장에서 대답하고 동양은 타자입장에서 대답한다. 서양인은 일인칭 인사이더로 세상을 보고 동양인은 삼인칭 아웃사이더로 세상을 본다. 전자는 자기중심적 투사이고 후자는 관계적 투사이다. 관계적 투사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전술한 역투시법이다. 우리의 민화에는 관찰자가 아니라 사물의 관점에서 그림을 그리는 역투시법이 반영돼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동양은 고객의 입장에서 요리, 젓가락만 들면 먹을 수 있고 서양은 요리사의 관점에서 요리, 양손에 포크와 라이프를 들고 썰어가며 먹어야 한다.

이에 따라 서양은 나를 중심으로하는 개인주의 성향이다. 개인이라는 말은 영어로 Individual로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말이다. 복수로 셀 수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다. 서양은 나와 가족이 대립하는 경우 동양과 달리 개인의 행복을 선택한다. 지극히 독립적이다. 독립이라는 말은 영어로 Independence로 매달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서양의 교육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심어준다. 반대로 동양은 똑똑함 보다 겸손을 더 중시 여긴다. 사회적인 기준이나 규범으로 즉 내적보다는 외적인 기준으로 자기를 보려한다. ‘일반화된 타자’로 자기를 보는 것이다. 동서양인은 이같은 차이로 청각장애인들의 수화와 일반인의 제스처도 다르다.

인도의 성화에는 수많은 인드라망이 나타나 있다. 이는 전술한 불교의 일중다다중일(一中多 多中一)사상이다. 그래서 동양은 자연과 합일하는 것이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생각, 자아를 비운 사람을 높게 평가한다. 유교에서는 이런 자연관을 천인상응(天人相應)이라고 한다. 자연에 상응하며 살라는 말이다. 사람과 하늘, 즉 자연계의 현상을 인간에게로 옮겨 놓은 것이다. 자연계를 대우주, 인간을 소우주라고 해 서로 상응하는 관계에 있다는 말이다.

자연의 이치는 나뭇잎과 같다. 프랙탈이론과 같이 나무잎은 부분이 전체를 대변한다. 프랙탈이론은 언제나 부분이 전체를 닮는 자기유사성을 가진다고 본다. 거시적으로 보면 별 -은하 -은하군 -은하단 -우주에 구조적인 유사성이 있고 미시적으로 보면 소립자 -원자 -분자 -세포 소기관 - 세포 -인체부위 -인간도 크기는 다르지만 구조적으로 닮아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이치는 자연의 이치로 움직인다. 이에 따라 동양은 서양에서 자연의 지배자로 생각하는 인간을 소우주로 본다.

아프리카에 뿌리를 두고 있는 동서양인은 검은 피부가 흰색과 황색으로 변화할 만큼의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환경과 공간 속에서 사고의 틀이 다르게 형성됐다. 동양은 자연을 하나로 연결된 생태공동체로 보고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고 생각하고 서양은 독립된 개체의 집합으로 보고 분리하고 구별, 철저히 이용해 왔다. 이제 물질문명을 추구해온 서양사상이 파괴해온 지구의 환경을 정신문화를 추구하는 동양사상이 나서 자정능력을 회복시켜야 한다. 동양사상이 바로 지구 온난화를 가져온 환경파괴의 해결사이다.

<경북 영양 일월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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