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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충우 칼럼] 해방과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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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8.17  11: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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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술가 통신일보 고문 / 한재 신충우  
 
산토끼 토끼야 너 어디로 가나 깡충깡충 뛰면서 너 어디로 가나
산토끼 토끼야 너 어디로 가나 토실토실 밤송이 주우러 간단다

국민동요 <산토끼>의 원문이다. 오늘날의 노랫말은 부르고 쉽고 어감이 편리한 현대말로 수정이 가해진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즐겁게 불렸던 동심이 담긴 우리의 노래이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산 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토실토실 알밤을 주워 올테야

국민동요 <산토끼>는 일제시대였던 1928년, 경남 창녕군 이방면 안리에 있는 이방초등학교에 재직 중이던 교사 이일래(1903〜1979년)가 작사작곡한 노래이다. 그는 당시 한살 짜리 딸(명주)을 안고 뒷산(고장산)에 올랐다 자기 앞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산토끼를 보고 우리 민족도 일제의 통치에서 벗어나 저 산토끼처럼 자유롭게 뛰어 놀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에게는 남녀의 연정보다 민족의 ‘자유’, ‘해방’, ‘독립’이 더 절실한 시대였다. 한국인들은 이 때 일제침략자들을 우리의 민요 <아리랑>으로 풍자, 비판, 저항하고 민족의 ‘자유’, ‘해방’, ‘독립’을 <아리랑>으로 노래했다.

인천 제물포 살기는 좋아도
왜놈의 등살에 못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일본 대판이 얼마나 좋아서
꽃같은 나를 두고 연락선을 탔는가.
(아리랑 후렴)

산천초목은 의구한데
이 땅의 주인은 어데갔나.
(아리랑 후렴)

풍년 들어도 먹을게 없어
북국의 벌판을 찾아 갔나.
(아리랑 후렴)

논밭은 헐어서 신작로 되고
집은 헐어서 정거장 된다.
(아리랑 후렴)

말깨나 하는놈 감옥소 가고
말깨나 하는놈 북망산 간다.
(아리랑 후렴)

일제를 타도하기 위해 싸우던 독립군 광복군들도 <광복군 아리랑>을 불렸다. 이 노래는 장단이 경쾌한 <밀양아리랑>과 곡조가 비슷하고 밀양아리랑의 가사에도 광복군이야기가 나온다.

<밀양아리랑>은 옛날 밀양 사또의 외딸 아랑(阿娘)이 젊은 통인(通引)의 요구를 뿌리치다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것을 슬퍼해 “아랑 아랑”하고 노래를 부른 데서 비롯됐다 하며 경상도지방에 널리 전파된 민요이다. 세마치장단이고 가락은 본래 메나리조였으나 근래에는 경기목으로 고쳐서 부르고 있다. 생동적인 장단이 매우 꿋꿋하고 경쾌하게 들리는 특색을 지녔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듯이 날 좀 보소/ (후렴)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로 시작된다.

<정선아리랑>은 그리움의 노래이다. 조선초기 고려의 7현들이 강원도 정선에 스며들여 살며 멸망한 고려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애잔한 가락이다. 현재 표준적으로 불리는 다음의 아리랑 노랫말은 아리랑 부분 외에는 일제 강점기에 변형 작사된 <신 아리랑>이다. 한이 서려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데리고 가시는 님은
백리를 가도 날아서 간다.

아리랑의 노랫말과 가락은 수천개가 창작, 탄생했지만 변하지 않고 전승돼온 것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경기아리랑)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밀양, 진도, 정선아리랑)
등의 노랫말이다.

사회학자 신용하의 연구에 의하면
아리랑은 고운 님과 (사무치게) 그리운 님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일제 시대의 <아리랑>에는 후자의 뜻이 담겨 있다.

인간은 누구나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물결치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이끌리는 대로, 살고 싶어 한다. 세계적으로 자유와 평화, 국가적으로 자유와 민주, 개인적으로 자유와 시장경제. 냉전체제가 붕괴된 후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틀이다. 대기 속의 공기와 같이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가 향유하면서도 잊고 사는 것이 바로 자유(自由)이다.

15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지 64주년이 되는 경축일이다. 그러나 윤보선 전 대통령과 유력 일간신문사 사장 부인이 친일파 후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들은 8촌간으로 고조부가 같다. <한겨레신문> 8월 14일자 보도에 의하면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름을 떨친 명문가를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집안이 윤웅렬-윤영렬 형제 가문이다. 해평 윤씨로 ‘노론’의 대가였던 이 가문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윤두수(1533~1601년)의 후손으로 윤보선 대통령, 윤치영 서울시장, 윤일선 서울대 총장 등을 배출했다.

윤웅렬(1840~1911년)은 조선 말기 군부·법부대신을 지낸 뒤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지목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됐다. 유력 일간 신문사 사장 부인은 윤웅렬의 장남 치호의 증손녀이다. 윤치호는 중추원 고문을 지냈다. 윤웅렬의 동생인 영렬(1854~1939년)은 6남3녀를 낳았는데 이 가운데 4명의 이름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가 있다. 손자를 포함하면 모두 5명에 이른다. 대한민국 두번째 대통령인 윤보선(1897~1990년)은 일제 때 조선총독의 자문기관이던 중추원의 참의를 지낸 윤치소의 장남이다. 치소는 윤영렬의 둘째이다.

99년 전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합병 됐을 때 우리나라의 사회지도층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시대에 순응하는 친일의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약 없는 항일의 길이었다. 필자는 민족사학의 태두이자 항일 독립운동가였던 단재 신채호(1880~1936년)의 일가로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우리 집안은 아직도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무국적자 단재는 지난 4월에야 나라가 광복한지 64년만에 국적을 회복했다. 올 3월 호적 없이 사망한 (무국적) 독립유공자라도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 수 있도록 개정된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4월 13일 임시정부수립일에 맞춰 62명의 독립유공자의 가족관계등록부 창설이 허가됐다. 이에 따라 단재의 손자(상원)가 제기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친자관계 인지 청구소송을 서울가정법원이 8월 12일 받아들여 단재가 세상을 떠난지 73년 만에 아들의 이름(수범, 1991년 병사)을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릴 수 있게 됐다. 요즘에는 고종 때 사간원 정언을 지낸, 단재의 조부(성우)가 고향 충북 청원에 남긴, 잃어버린 땅을 찾기위한 상속 문제로 소송 중이다. 끝도 없는 싸움이다.

대한국민들에게 묻는다. 단재 신채호는 누구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였는가? 친일파 후손들을 위해 그 험난한 길을 걸어 왔는가. 광복 후 친일파 후손들은 기득권을 등에 얻고 부끄럼없이 지배계층을 형성하며 승승장구해 왔는데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대한민국이 광복한지 64돌이 되도록 아직도 국가를 상대로 독립을 구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 정부의 각료 중에도 안모 장관, 이모 청장, 현모 위원장 등이 친일파 후손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의식은 아직도 이판사판(理判事判) 공사판인가. 주먹구구식으로 공사판 인부들처럼 각료을 임명하려거든 차라리 매국노의 후손들에게 인심이라도 후하게 써라. 이완용의 손자는 어떨까? 국민정서를 무시하는 반민족적 이런 행위가 계속된다면 누가 국가 위란시 몸숨을 바쳐 싸우겠는가? 적어도 이런 인사들이 선출직이나 임명직에서는 사회통념적으로 걸러져야 민족정기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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