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전문가 칼럼
[신충우 칼럼] 나를 찾아가는 길
기자명  |  cdnews@cd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9.07.28  14:32:4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구글 msn
   
 
  ▲ <저술가 통신일보 고문 / 한재 신충우>  
 
숲길을 따라 걸어간다.
우리 할머니가 예쁜 가마 타고 시집간다.
저 고개 넘으면 우리 학교가 보인다.
숲길을 따라 걸으면
아직도 그 재잘거림이 들린다.
숲길은 이 마을과 저 마을을 이어준다.
숲길은 하나됨이다.

<지리산길> 팜플렛의 안내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장거리 도보 트레일 코스인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 가는 여행이다. ‘둘레길’은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3개 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 5(구례⋅남원⋅하동⋅산청⋅함양) 100여개 마을의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연결하는 300여km 길로, 오는 2011년까지 완성할 예정에 있다. 사단법인 ‘숲길’이 산림청의 후원을 받아 조성하고 있다. 2008년 초 먼저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을 잇는 20.4 km의 길이 열려 시범운영 되고 있다.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에서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세동마을까지 구간이다.

소나무 숲길, 층층 계단의 다랑이 논길,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던 등구재 고갯마루, 낙엽송길 등 다양한 길뿐 아니라 빨치산의 슬픔이 녹아있는 역사 속의 산길 그리고 지리산의 아름다운 마을과 소박한 삶을 만날 수 있다. 잃어 버린, 아니 잊고 산 우리 것을 다시 정감있게 만나 볼 수 있게 한다. 강박관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어느 곳에 출발하든 걸으며 마을도 보고 지리산 주봉능선도 완상할 수 있다. 숲속의 향기와 산촌의 삶을 관찰하면서 지친 심신을 어루만질 수 있는 우리 산천, 우리의 길이다.

깊은 숲길을 지나니 밭길과 논길이 나온다. 산 아래 논길을 걷는 행인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이게 우리가 찾고자 하는 길이 아닌가? 마음의 여행, 나 자신속으로 가는 길이다.

멀리 중황마을과 상황마을이 보인다. 지리산 가지능선과 어우러져 한폭의 풍경화와 같다. 논길에는 개망초와 엉겅퀴꽃도 소담스럽게 피어 있고 논의 벼 모종이 싱그럽다. 상황마을은 특히 다랑논이 시선을 끈다. 다랑논은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자리잡은 좁고 긴 논이란 뜻이다. 다랑이논, 논다랑이, 다락배미 등 그 이름도 다양하다. 나의 고향 황샛말에도 나랑논이 있다. 궁핍했던 시절에 한평의 땅이라도 농지로 만들어 벼농사를 짓고자 하는 조상들의 노력과 땀이 보이는 듯 하다. 상황마을 다랑논길을 지나면 비탈길로 접어든다.

전라도 상황마을에서 경상도 창원마을로 넘어가는 길이다. 거북이등을 닮았다고 해 등구(登龜)재라 부른다. 이 재를 넘어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이 장에도 가고 나무하러 가기도 하고 시집장가도 갔다. 경사가 꽤 있는 편이라 걷다 보면 제법 숨이 찬다. 이 고개가 제1구간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이다. 길 좌우로 벌농장과 옻나무나무 농장, 다랑논이 계속 펼쳐지므로 쉬엄 쉬엄 구경하면서 오르면 된다. 뒤를 돌아보면 다랑논 아래로 펼쳐지는 산능선과 마을 경관이 압권이다.

동구재를 넘으면 다시 숲길이다. 낙엽송이 시원스럽게 하늘을 뚫고 있다. 숲속에는 원시림의 늪도 있다. 숲길이 참으로 호젓하다. 하얀 산딸나무가지가 하늘을 덮고 있다. 숲길을 지나면 창원마을이 보인다. 멀리 지리산 천왕봉도 보이고 칠선계곡으로 이어지는 계곡도 웅장하다. 길 옆의 보리밭은 어릴 적 보리를 따서 불에 익혀 호호 불면서 먹던 개구장이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창원마을은 지리산 기슭에 자리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조선시대 세금으로 거둔 물품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다 해 ‘창말(창고 마을)’이었다가 창원마을이 됐다고 한다. 다랑논과 멋진 장작 담, 정겨운 골목, 집집마다 줄지어 선 호두나무와 감나무, 마을 다섯곳에 당산나무가 있는 이곳은 그 품 만큼이나 넉넉한 농심이 있는 마을이다.

멀리 교회가 보이고 밭에서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 마치 밀레의 그림 <만종>을 보는 것 같다. 창원마을 입구 언덕에 서 있는 느티나무 두그루가 웅장하다. 이 느티나무 나이는 약 5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창원마을에는 현재 100여호가 살고 있는데 주로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한지(닥종이) 생산지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한지’는 산자락의 작은 밭에 닥나무를 재배해 만들었는데 그 양이 많아 골짜기 마다 지소(紙所)가 있을 정도였으나 지금은 창원마을의 경우 한집 남아있다고 한다. 한지는 몇겹으로 바르면 갑옷이 될 정도로 강하며 열을 보전하는 효과도 뛰어나다. 온도 습도를 자연적으로 조절해 살아있는 종이라고도 하며 지금도 손으로 뜬 귀한 종이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여생을 보내봤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경치가 좋고 공기가 맑아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 땅 값이 어느 정도 되느냐고 농담삼아 물으니 주민들은 빙그레 웃기만 한다.

지리산 길은 ‘지리산 둘레길’이라고도 부르는 데 골짜기와 마을, 마을과 사람, 어제와 오늘, 너와 나를 이어주는 소통의 길로 모든 길로 통한다. 이 길은 자연속으로 가는 길이며 우리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끝 간데 없이 겹쳐지면서 멀리 이어지는 지리산 능선들, 물댄 다랑이 논에 잠긴 깊고 높은 산과 마을 이야기들, 동네 돌담 뒤 감나무, 빨갛게 매달린 앵두와 보리수, 감자밭, 고추밭을 지나면서 느끼는 고향의 맛, 논밭길과 숲길에서 만나는 갖가지 풀, 나무, 꽃들과의 대화 등 지리산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과 이야기들은 모두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우리네 문화이자 고향이다.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하면 홀연히 어딘가 떠나고 싶어진다. 비록 멀지 않은 곳이라도 내 자신을 찾아...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만이라도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은 것이 여행이다. 숲과 바람, 태양을 벗 삼아 마을길과 고갯길, 논밭길과 숲길을 걸으면서 마음의 여행을 즐기고 자연속에서 나 자신을 찾아보면 어떨까?

꼭 정상을 밟고 내려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산의 정취를 즐기며 걷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산행이 가능하다. 정상을 밟겠다는 무리한 정복의식으로부터 벗어나면 오히려 몸과 마음은 한층 자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른다.
기자명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news@cdnews.co.kr]
저작권자 ⓒ통신일보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 문의

알면 돈되는 새 제도
통신일보 2030뉴스 사이트맵
  • 쇼핑
    IT·생활가전
    웰빙·뷰티
    생활·사무용품
통신제국 | 회사소개기사제보제휴문의이용약관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통신일보 · 발행인-편집인 이영림 · 등록번호 서울-아00840 · 등록-발행일 2009년 4월 17일 · 본사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로 25길 5, 501호
취재본부 경기도 과천시 별양상가1로 18, 과천오피스텔 916호 · 대표전화 02-3447-6100 · 사업자:123-22-49273 · 청소년보호책임자 남일희
통신일보의 모든 기사와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통신제국 Copyrigh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