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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충우 칼럼] 도덕군자의 죽음???
기자명  |  cdnews@c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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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6.10  17: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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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재사관연구소장 한재 신충우  
 
追慕政局(추모정국)이다.
투신자살한 피의자가
산 자들에게 그 책임공방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 위력은 대단,
지지자들을 다시 결집시켜
수세를 반전시키고 있다.

추모인가, 동정인가?
추모(追慕)라기보다는 반전(反轉)정국이라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망자를 끌어들여 정치를 하겠다는 말인가?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을
중학교 1학년생인 아들은
“쪽팔려서 죽었다”고 하고
고향 충청도의 한 촌로는
“마누라가 서방을 잡아 먹었다”고
했다.

말은 거칠어도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 그의 죽음을
무슨 지사나 열사인양
미화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한 언론사의 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 자신과 가족의 책임이라는 응답은
50대(44.7%) 60대 이상(58.2%) 서울(42%) 인천ㆍ경기(43%)에서,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응답은 40대(45%) 호남(54%)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지지율이 다소 올랐다고 좋아하는 민주당에 묻는다.
전직 대통령과 그 가족들은
재임시 직분을 이용해 돈을 받았더라도
모르는 척 눈 감아 주어야 하는데

조사하면 정치보복인가?
대표가 전국민을 상대로 답해 주었으면 좋겠다.
모리배(謀利輩)와 다름없는 행동이다.

장엄하게 국민장으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는
이 사학도에게
조선시대 ‘강화도령’ 철종(1831~1863년)을
생각나게 한다.

경기도 고양에 있는 예능이 그의 능이다.
고종의 생부 흥선대원군(이하응)이 주관했던 그의 국장은
조선왕실의 권위를 홍보하는 차원에서
생전의 삶과 어울리지 않게 거창하게 행해졌다.

시대의 이단아 노무현(1946~2009년)을 ‘서민 대통령’이라 부른다면
농사짓다 잡혀와 왕이 된 강화도령은 ‘서민 군주’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강화도령은
24대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형 회평군(명)의 옥사로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돼 살다
강제로 잡혀와 19세에 왕이 됐다.
이 악역은 안동 김씨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맡았다.

보수진영의 자중지난 속에
전라도를 배경으로
대통령이 된 DJ와 그 세력들이
진보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경남 출신의 노무현을 입양해
대통령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를 정계에 입문시킨 것은 YS다.
철종은 왕위에 올라 어느 정도 정치를 파악하자
그래도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시도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현실도피책으로 여색을 탐하다 병사했지만
왕위에 오른 지 3년 후 친정을 하게 되자

나름대로 백성을 구제하고 선정을 펴려고 애를 쓰긴 했지만
안동 김씨의 서슬에 눌려 뜻을 피지 못했다.
철종은 재위 14년간 세도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색에 빠져 정치를 바로잡지 못한 채 병사했다.

1852년부터 친정을 시작했으나 정치에 어둡고
외척인 안동 김씨 일파의 전횡으로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전라도의 민주당을 벗어나려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으나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도로 민주당’이 되고 말았다.
개혁을 시도한 정치도 아마추어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결국 보수진영에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의 집권은 한마디로 대립, 분열, 갈등의 5년으로
여기서 놈현스럽다는 신조어가 만들어 졌다.
이로인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해야만 했다.

그러나 퇴임후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귀향,
신선한 충격으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으나
재임시의 뇌물수수혐의(박연차사건)로
불구속 상태로 검찰의 조사를 받다

자책감에 사저 뒷산 부엉이바위에 올라
승부사답게 생을 결단했다.

이유야 어쨌든 전직 대통령으로서
적절치 못한 비겁한 행동이다.
혼자만 독판 깨끗한 척 ´도덕군자´인양 행세하다
치부가 드러나니까 비겁하게 존재를 감춘 것 아닌가?

그러나 함세웅 신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는
<희망세상> 6월호(81호)에 게재된
´선택과 결단의 죽음´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삶과 죽음을 넘어 초탈한 경지에서 결단"했다고
그의 자살을 미화 분석했다.

나는 생사(生死)연구가로서
그의 자살을 이기적으로 본다.
죽음으로 모든 것을 다 버린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잃어버린 것을 찾겠다는 심리의 발로이다.

그는 생사를 하나로 보고 있어
유서에 “삶과 죽음이 하나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화장해라.
마을 주변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라”

사망 후 본인의 유서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뤄질 것으로 전해졌던
장례가 어느 날 갑자기 누구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몰라도
국민장으로 변신, 조선시대 강화도령을 생각나게 하고 있다.

장례란 예나 지금이나
산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요리되나 보다.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정치도
철종이 죽고 고종이 등극해 대원군이 권세를 쥐면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권세란 이렇게 허망한 것이다.
‘노짱’과 그를 추종하던 진보진영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으로 인해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 12.12사태의 주역들에게도
사망시 전직대통령이라는 명분으로 가족들이 국민장을 요구할 경우
허용해야하는 전례를 남긴다는 사실이다.

개도 소도 모두 국민장인가?
역사는 앞을 보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
흥분한 노사모 등 지지자들을 달래주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어겠지만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다 숨진 사람에게
정부가 국민장의 예우를 하는 것은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다.

죽음 앞에서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인간이라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돼고 안되는 것은 분명히 해야 한다.
원칙이 있어야 한다.

올초 별세한 김수환추기경이 전국적인 애도를 받은 것처럼
그의 지지자들이 애도하는 것은
국민장과 별개의 문제이다.

시정잡배들도 보스가 죽으면
인지상정으로 슬퍼하는 법이다.
생명은 어느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다.

검찰은
그의 딸이 미국 뉴저지주에
소유하고 있다는 저택의 정체를 밝혀
국민들에게 뇌물수수사건에 대한
의혹을 남겨서는 안될 것이다.

문제의 640만 달러는
동교동 알부자나 마음씨 좋은 좌파진보에게는
´껌값´정도로 치부될 수 있겠지만
필자와 같은 소시민들은 평생 구경조차조 할 수 없는 거액이며
피의자를 숨지게 한 사실상의 저승사자가
바로 이것 아닌가 한다.

그가 죽었다고 여기서 덮는다면
오히려 정치보복으로 이 사건을
수사해 왔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검찰은 어떤 외풍에도 흔들림없이
공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심기일전(心機一轉)해
이 사건을 명쾌하게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투사 노무현이 생전에 주장하던
정의와도 직결되는 자존의 문제이다.

특히 좌파 진보진영은
추모정국을 정치적으로 악용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호재라도 만나듯이
날로 정치적 공세를 높여가고,

일부 언론과 인터넷도
반사이익이라도 얻으려는듯이
이에 부화뇌동하고,

거기에 일부 대학교수라는 사람들까지 합세,
(서울대의 경우 약 7%수준)
직업 운동권 수준의 선언문을 들고 나와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는 형국이다.

명색이 대학교수라면
적어도 이런 문제들은 세미나 등을 통해
학문적으로 접근해 해결책을
강구해야 되는 것 아닌가.

직업 운동권처럼 행동하려면
가면을 벗고 떳떳하게 정치를 하거라.

4.19나 6월 항쟁때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번에도 지난해 촛불시위 때처럼
좌파진보진영들이 세를 과시해 볼 모양이다.
참여세력들이 무늬만 다를 뿐
대부분 좌파진보성향이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가치판단을 벗어나
허무적이고 감상적인 분위기에 빠져서는 미래가 없다.
감상적인 노사모라면 그래도 이해를 하겠다.

고민하고 균형과 역사의식에 기초해 해법을
제시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청소년들도 선거권을 달라고
시국선언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흔히 ‘청소년’이라 하면
만 13세에서 만 18세 사이의 사람을 칭한다.
87년 6월 항쟁 22주년을 맞이하여 다음과 같이 청소년들은 선언합니다.

1.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국민 의견 무시말라!
2. 작년에 약속한 국민과의 소통 이행하라!
3. 청소년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2009년 6월 -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청소년 일동

고명하신 좌파교수들이 나서
해결책을 강구하기 바란다.
무엇을 원하는가?

장례가 끝났으니
덕수궁 앞 시민분향소도 자진 철거하라.
고인에 대한 예(禮)가 아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고인이 유서에 남긴 말이다.

침묵하고 있는
절대다수(70%이상)의 국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가정에서 TV를 시청하면서
“죽어서까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라며 혀를 찬다.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며
국민을 선동하는 노정객(老政客)이나
‘나 여기 있다’고 존재를 과시하는
목소리 큰 사람들만이 국민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존재는 유권자로서
선거로 말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패배했으면 깨끗하게 승복하고
국가 발전에 협조하는 것이 민주시민일 것이다.

두 번 죽게 하지 마라.
고인이 속세를 떠나
이제 편히 쉬게 하여라.
평가는 역사가 할 것이다.

부산상고→ 판사→ 변호사→ 민주화운동→ 국회의원→ 청문회스타→ 대통령
→ 피의자→ 투신자살→???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
모두 냉정을 되찾을 때다.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

잘 가소-
이념을 떠나
민주화동지로서의 작별이다.

<단재사관연구소장 한재 신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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