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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충우 칼럼] 법정의 ‘무소유’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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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3.30  18: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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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술가 통신일보 고문 / 한재 신충우  
 

“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강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圓卓會議)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語錄)》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그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중략)…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所有慾)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끼리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不辭)하면서, 제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중략)…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無所有)의 역리(逆理)이니까. (현대문학, 1971. 3)

무소유의 철학을 실천한 법정(1932~2010년)의 산문집『무소유』의 <무소유>편에 나와 있는 글이다.『무소유』는 법정이 문학지, 신문, 잡지 등에 매달 기고했던 에세이 원고들을 범우사가 모아 편찬한 책이다.
삶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사유의 기쁨과 포근한 마음의 안식을 제공한 『무소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작품으로, 북적이는 도심이 싫어 자연으로 돌아가 새와 바람, 나무와 벗하며 산 스님은 평범한 모든 이들에게 맑고 깊은 영혼의 세계를 보여준다.『무소유』의 원문이기도 한『영혼의 모음(母音)』은 한 구도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맑고 진실된 기운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자연과 벗하며 어린왕자와의 대화를 통해 순수한 영혼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법정은 평범하고 무료하기까지한 일상을 감동의 언어로 바꾸어 놓는다. 특히 은사인 효봉선사의 삶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가는 대목은 법정의 구도자로서의 모습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법정의 에세이 정신은 심산유곡의 불심, 고색창연한 불교 신앙을 오늘의 이 현실, 끊임없이 사랑과 증오의 사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이 세계로 끌어내 온 것이다. 그는 전통신앙으로부터 거의 절연된 현대의 사상시장에 새로 옷 입힌 불교의 정신을 우리 앞에 내놓는다. 그의 글들은 대부분 짤막해 일상 내지 세속잡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이 편린들을 통해 새로이 발견하는 불교의 현대적 모습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풀고자 대학생(전남대)이던 시절 당대의 선승 효봉(1888~1966년)을 찾아가 출가한 법정(속명 박재철)은 서산대사의 <선가귀감(禪家龜鑑)>을 한글로 번역하는 등 학승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무엇보다 대중에게는 무소유의 삶 자체로서 맑은 울림을 준 정신적 지도자였다. 그의 무소유는 간소한 생활을 지향하는 실천적인 삶이었다는 점에서 그냥 가르침과 다르다. 가진 것이 많으면 정신의 공간을 확보할 수 없다며 비움을 늘 강조해왔다. 그는 이를 통해 자기다움, 본질적인 삶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법정은 바로 거기, ‘비움의 역설’에 행복의 비밀이 있음을 알았다.
효봉은 현대의 고승으로 정혜쌍수(定慧雙修)에 대한 구도관을 확립했다.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그는 귀국후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가 되어 법조계에서 일했다가 1923년 한 피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후 ‘인간이 인간을 벌하고 죽일 수 있는가’라는 회의에 빠져 법관직을 버리고 3년 동안 전국을 방랑한 뒤 1925년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출가했다. 평소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제자들을 엄하게 가르쳐 문하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됐다.

그러나 법정의 무소유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날선 칼날처럼 매 순간 자신을 응시하며 홀로 산중생활 속에서도 졸음을 쫓기 위해 칼로 대나무 찍기를 해온 철저함 끝에 얻어진 과실이다.
1992년 강원도 화전민이 남긴 오두막에 기거하며 변소도 짓고 독서와 명상, 노동의 단출한 생활을 한 법정은 선승으로서뿐 아니라 자연주의 사상가로 새롭게 보인다. 그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쓴『월든』을 무척 좋아했다. 소로우가 지낸 월든호수와 오두막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그곳을 찾았을 때, 그는 “정든 집 문전에 섰을 때처럼 반가웠다”고 털어놨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침묵의 의미를 배워야 한다”며 법문 끝에 늘 “내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니 나머지는 저 찬란한 꽃들에게 들으라”고 맺곤 했던 법정. 그는 자연과 우주와 하나된 진정한 자연주의자라 할 만하다.

소로우(1817~1862년)는 미국의 전설적 녹색 사상가이다. 미 동북부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출생인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급우들과 달리 세속적인 출가가도를 걷지 않고 1845년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만 2년2개월 동안 ‘오직 삶에만 직면해 사는 실험적인 생활’을 했다. 살면서 자연 속에서 간소한 생활을 하면서 자족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숲속의 생활『월든』은 그 생활 보고서인 동시에 가치관에 대한 명상이다. 읽는 사람은 자신의 생활이 얼마나 맹목적이고 위선에 차 있는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생태문학의 고전으로 19세기의 경전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최초의 녹색 서적이다.
월든 호수는 메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 위치한 숲 속의 작은 호수이다. 내가 숲으로 들어 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 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월든』에서 저자가 한 말이다. 소로우는 배우는 학생의 자세로 숲에 들어갔다 깨달음을 얻은 스승으로 나왔다. 움막터는 월든 호수 북쪽 호숫가에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인간을 감탄에 빠뜨릴 무렵인 1854년, 그 가운데 살아가는 노동자로서 삶의 질곡을 보여준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즈(1812~1870년)의『어려운 시절』과 때를 같이해 나온 소로우의『월든』은, 사회에 의해 규정되는 삶을 넘어 인간의 존재목적을 추구하는 삶의 한 방법을 보여준다. 이런 소로우의 혜안은 한층 더 판박이 같은 삶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반성과 삶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던져준다. 그의 책이 ‘살아보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이 사람의 생각을 따라 생활할수록 더 공감할 부분이 많음을 깨닫는다. 소로우는 적게 먹고 가난해, 즐거움을 알아낸 사람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저 연기가 되어 떠난 무소유자 법정. 그는 그렇게 비우고 비운 것들을 평생 다른 사람을 위해 내주었다. 출간한 30여권의 책 인세 대부분이 장학금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졌다. 수십억원에 이룬다. 비움은 곧 충만의 시작임을 깨닫게 한다. 자연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비움과 나눔의 철학을 실천했다. 그의 큰 가르침은 ‘화중생연(火中生蓮)’으로, 불꽃 속의 연꽃처럼 피어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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