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술가 통신일보 고문 / 한재 신충우

나의 색깔은 무엇인가?
나의 소리는 무엇인가?
나의 향내는 무엇인가?
자기만의 개성(세계)을 말하는 것이다. 이중섭(1916~1956년)의 미술, 이문열의 문학, 윤이상(1917~1995년)의 음악이 그에 대한 예가 될 것이다. 작가는 자기 나름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 자기 언어, 자기 표현, 자기 주장이 있어야 한다. 객관적인 주체가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아무런 울림을 느껴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작품이다. 자기의 세계를 표현하는 그 ‘무엇인가’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作家)란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음악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다. 작가들은 자기 고유의 색깔, 소리, 향내를 찾아내기 위해 고뇌에, 고뇌를 한다. 이것이 있어야 작가로서의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를 대신한다. ‘소’하면 이중섭, ‘회백색의 한국’하면 박수근(1914~1965년)을 말하고 ‘황토빛 제주도’하면 변시지를 대신한다.

“나하고 결혼하면 사흘을 굶어도 배고프다는 말을 안 해야….” 농민문학의 선구자 이무영(1908~1960년)의 프러포즈다. 구순의 부인 고일신은 “선을 보러 나갔을 때 나는 이미 그 분의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기꺼이 그의 반려자가 되어 힘껏 내조해주리라 생각했었다”고 했다. 젊은 시절 문학소녀였다는 그녀는 결혼 후 이무영 작품의 최초 독자이자 평론가였다. 부인은 “무영은 누가 자기 글에 손대는 걸 싫어했는데 내가 ‘이 부분을 고치면 어떨까’ 하면 ‘당신 제법인데’ 하고 칭찬해줬다”고 했다.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이무영은 1926년 조선문단을 통해 등단했다. 1939년 동아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군포로 내려가 몸소 농사를 지으며 단편소설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를 비롯한 농민 소설을 발표했다.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은 자연을 벗하며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위해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교외나 시골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면 소설가 이문열과 시인 고은이 경기도 안성, 소설가 이외수가 강원도 춘천, 화가 변시지가 제주도 서귀포 등에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파주, 무안, 양산, 제주 등 전국의 각 지역에도 문화예술인촌이 조성돼 있다. 필자도 고향 쌀안으로 돌아가 저술활동을 하려한다. 인류의 뿌리인 자연은 작가들에게 법고창신(法古創新)을 깨닫게 한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인간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느끼며 자랐느냐가 자아형성에 지대하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의식적으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배웠느냐의 지적능력과는 다른 것이다. 전자는 영유아기의 가정과 자연환경에서, 후자는 초등학교 상급학년 이후의 학교와 사회환경에서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밑바탕은 전자가 주도하고 밖으로 표출되는 포장된 나는 후자에서 형성된다.
어린 시절 각인된 오감(습성)은 제2의 본성으로 일생을 지배한다. 한 예로 어린시절 입에 밴, 아니 뇌에 각인된 입맛은 결혼 후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내와 심하게 충돌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대로 남는다. 가난한 사람이 아무리 출세를 한다해도 허름한 주점을 찾아 막걸리를 마시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필자도 어린 시절의 고향을 자주 연상한다. 길가다 꽁치 굽는 냄새를 맡으면 고향의 어머니, 경유 타는 냄새를 맡으면 6∼7세 때의 방아 찧는 발동기가, 개비린내가 나면 초등학교 1∼2학년 때 함께 놀던 강아지들이 생각난다. 또 음주한 다음 날에는 얼큰한 콩나물국이, 입맛이 없을 땐 호박죽이나 아욱국이 기다려 진다. 시공을 초월하는 잠재된 생각이다. 그러나 서울에서 자란 자식들은 아비와 달리 아내의 입맛을 그대로 닮아가는 등 도회지적 습성을 가져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뇌가 감정의 처소로서 우리의 기분을 관장하기 때문이다. 우뇌는 본능, 창조성, 고도의 정신기능 등과 관련이 있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위인들은 우뇌의 능력을 발휘한 사람들이다. 인간은 보고 들은 것에 의해 지배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인간은 보는 것에 의존해 진화해 왔다. 교육심리학 통계에 의하면 인간의 학습은 시각이 87%, 청각이 7%, 그리고 미각․후각․촉각을 합해 약 6%로 이뤄진다고 한다. 또한 인간의 기억력도 들은 것은 10%, 본 것은 50%로 듣고 보고 한 것이 80%를 기억한다고 한다.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들도 대부분 어린 시절에서 영감을 얻는다. 작가들이 하는 일이란 작은 서재에 앉아 진짜 세상을 회상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많은 문학작품들이 저자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고 있다. 문학작품의 배경이 그래서 대부분 작가의 고향인 경우가 많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은 소설『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자 작가 이효석(1907∼1942년)의 고향이다. 소설『객주』속의 장 터 거리는 작가 김주영의 고향인 경북 청송이다. 최명희(1947~1998년)의 대하소설『혼불』은 작가의 고향 전북 전주와 남원을 그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소설『지리산』은 경남 하동 출신의 작가 이병주(1921∼1992년)가 고향 지리산을 무대로 남과 북의 이념의 문제를 다룬 ‘소설로 읽는 한국 현대사’이다.

19세기 말의 우리 풍속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대하소설『객주』의 무대, 경북 청송에 문학촌이 조성된다. 객주문학테마타운 조성사업 추진위원회는 2009년 1월 심의위원회를 열어 진보면 진안리 옹기동막 일대 15만㎡(4만5,000여 평)를 해당 사업부지로 선정했다. 2012년 완공되는 객주문학테마타운에는 작가의 원고와 소장품 등을 전시할 객주문학관과 고전·현대문학을 영상으로 소개하는 객주영상관, 국악·사물놀이 등을 배울 수 있는 객주풍물레저타운, 민박형 주막 등이 들어선다. 작가의 몸과 마음에 잠재돼 있는 어린시절의 고향은 농어촌이건, 도회지건 간에 상상의 나래를 펴게하는 ‘사고의 보고’이다. 어린 시절이야말로 작가가 직접 경험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발자크의 소설이 당대의 역사학자, 사회학자, 통계학자들의 작업보다도 더 많이 프랑스 사회에 대해서 알려준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박경리(1926~2008년)의 대하소설『토지』에도 적용된다. 경남 하동 평사리를 배경으로 구한말에서 해방에 이르기까지 500여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토지』는 그 문학성 못지않게 당대의 역사와 문화의 반영물로서 중요한 연구가치를 지닌다.
창작의 재능은 유년기에서 소년기 사이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상적인 능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년기 이후까지 지속되는 창작의 재능은 정상적인 인간의 속성을 희생하고 나서야 창궐하는 질병과도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거름을 먹고 자란 멜론이 더욱 맛있듯이 그것은 온갖 지저분한 악덕들이 혼합된 토양에서 가장 화려하게 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