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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술가 통신일보 고문 / 한재 신충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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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도시는 불행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물질적 풍요보다 더 비대해진 욕망 탓이다.『일상적인 삶』(민음사)의 저자 프랑스 철학자 장 그르니에(1898~1971년)는 “비밀 없이는 행복도 없다”고 강조했다.
요즘 ‘행복한 나라’로 주목을 받는 바누아투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이다. 우리를 에워싼 서구의 물질과 문명에서도 비껴서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576달러(약 158만 원)에 불과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구호물자를 가져다 준 미군 의무병 ‘존 프럼(John Prum)’을 숭상하는 섬 주민들은 기독교와 서구 문명을 거부하고, 고유한 전통을 찾아 숲으로 돌아간다.
문명 세계에서 사용되는 화폐 없이도 불편함 없이 행복하게 살아간다. 돼지 이빨, 돗자리, 조개, 살아있는 돼지 등이 화폐역할을 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 식민지 통치는 바누아투에 현대식 은행을 유산으로 남겼지만, 이곳의 예금계좌를 가진 사람들은 바누아투 인구의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여전히 전통경제 속에서 현금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바누아투가 2006년 영국 한 재단의 행복지수 측정 결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다. ‘문명화와 행복’은 반비례하는가? 물질 문명의 눈으로 보는 가난한 이 섬에 행복이 있다. 주목된다. 현대의 세계 경제 속에서 잘 사는 건 무엇이고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현대인의 물질문명을 성찰해 보게 한다. 원시는 야만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편안한 행복이다. 고립돼 있는 땅일수록 원시상태가 잘 보존돼 있다. 필자는 어린 시절 산골에서 자라 이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어떤 나라는 못 살까? 15만년전 똑같은 아프리카 조상으로부터 출발한 인류가 이후 각자 흩어져 살면서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못살게 됐다.
시장경제만 도입하면 잘살 수 있을까. 영국 경제학자 존 케이는 저서『시장의 진실』(에코리브르)에서 국가의 제도가 부국과 빈국으로 갈라 놓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이야기를 꺼냈다. ‘루소의 사슴’도 그중 하나다.『사회계약론』을 쓴 프랑스 사상가 루소(1712~1778년)는 사슴을 잡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이 협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사슴을 잡으러 다니다가 한 사람이 앞에 나타난 토끼를 보고 협동을 포기했다. 존 케이는 루소의 사슴 사례에서 협동을 하면 모든 사람이 더 잘살게 되더라도, 이기적인 개인은 반드시 협력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국가 제도라고 했다.
협동을 강제하면 당장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오래 가지는 못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협동해 사슴을 잡으면 공평하게 분배돼 굳이 대열을 이탈해 토끼를 잡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자꾸 인식시켜줘야 한다고 했다. 부자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시장 경제 체제 도입만으로 해결 되는 게 아니고, 합리적인 정치·정부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중국은 생산성이 낮고 가난했지만, 세계 각국으로 나간 많은 화교는 다른 제도 아래에서 부자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2009년 2월 발행호에 의하면 세계인구의 중산층 비율은 1990년에만 해도 3분의 1에 불과했으나 2006년 57%가 됐다. 중산층의 정의는 통일돼 있지 않지만 인도의 경제학자 서짓 발라는 “하루에 10~100달러 버는 사람들”로,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의 다이애나 패럴은 “기본적인 의식주에 쓰고 남은 수입이 3분의 1쯤 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동물의 왕 사자는 싸움을 하듯이 고기를 먹지만, 식사가 끝나면 핥아주면서 서로 화해한다. 풀벌레가 밤에 우는 것은 사랑의 세레나데다. 암수는 생물학적인 욕구를 풀어 주는 서로의 성적 도구이다. 짝짓기 철이 지나면 숲 속은 조용해 진다. 악어는 파충류 중에서 뇌와 심장이 가장 발달 돼 2억년을 이어 왔다. 남아프리카의 미어캣은 사람처럼 직립해 적이 오나 망을 본다. 남미 안데스산맥의 라마는 화가 나면 위액을 인간의 침처럼 품어낸다. 예수 도마뱀은 기독성서에 나오는 선지자처럼 물 위를 걷는다.
원시적인 자연 그대로의 야생동물의 모습이다. 인간도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세상의 가치나 평판을 떠나 행복감이 느껴진다. 허름한 주막에서 격의 없는 친구를 만나 막걸리를 마시며 느끼는 감정이 이런 행복감일 것이다. 부모들이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노는 자식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감도 이런 마음에 있다.
우리가 1950, 60년대의 농경시대보다 현재 사는 것은 훨씬 나아졌지만 배고프던 그 때 그 시절보다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는 묘미, 인생의 맛을 잊고 잃어가기 때문이다.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원시성이 왜 야만인가? 서구인들은 남태평양의 문화와 사람들을 ‘원시성’으로 세련되게 포장하면서 야만적이라고 깔본다. 태평양 원주민의 역사가 한결같이 선사(Prehistory)로 치부되지만 여기서 ‘선사’란 고대 이전의 역사가 아니라 ‘유럽인 도래 이전의 모든 역사’를 의미한다. 서구인들에게 이곳의 선사 시대는 고고학적 차원에서 ‘문자 없는 시대’가 아니라 ‘아직 유럽문자를 쓰지 않던 시대’를 의미할 뿐이며, 역사시대란 것도 ‘유럽문자가 들어와 유럽인들에 의한 기록이 가능해진 시대’를 뜻한다. 지금까지 태평양의 역사와 문화를 서술하는 어떤 책도 단 2개의 시기 범주만 설정할 뿐이다. 역사뿐만 아니라 생물학도 마찬가지다. 유럽인 도래 이전에 이뤄졌던 생물식민지화와 유럽인 진출 이후에 이뤄졌던 생물식민지화의 이분법이 그것이다. 식민통치에 저항한 전사들의 역사와 무덤도 존재하지만 가해자인 유럽과 일본인 병사들의 추모기념비와 기록만 남아 있을 뿐, 독립운동사는 서양의 어느 책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옷을 입지 않고 맨 몸으로 사는 파푸아뉴기니 원주민 남성들은 성기만은 긴 고깔 모양의 덮개 ‘코테카(Koteka)’를 차고 다닌다. 조롱박 말린 것으로 만들어지는 코테카는 음낭과 허리 주변에 묶어 고정시키는 일종의 남성 생식기 가리개. 파푸아뉴기니는 남태평양 서쪽 끝에 위치한 섬나라다.
섬이 많다고 해 폴리네시아, 피부가 검은 사람들이 산다해 멜라네시아, 작은 섬들이 모였다고 해 미크로네시아. 유럽인들은 적도 태평양의 망망대해 떠 있는 섬 지역에 참 쉽게도 이름을 갖다 붙였다. 하와이 제도, 투발루, 사모아, 통가 등을 폴리네시아로 통칭한다. 파푸아 뉴기니, 솔로몬, 바누아투, 피지, 누벨칼레도니 등은 멜라네시아로 묶어 부른다. 마리아나 제도, 팔라우, 마셜, 나우루, 키리바시 서쪽 지역 등은 미크로네시아라고 뭉뚱그렸다. 같은 폴리네시아도 프랑스 영역은 프렌치 폴리네시아, 사모아도 미국령 사모아가 달리 존재한다.
이렇듯 속칭 남양군도(일제때 붙여진 이름)의 이름과 문화권 분류는 순전히 서구의 작품이다. 원주민들이 쓰던 고유 명칭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태평양이란 이름부터 포르투갈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1480~1521년)의 눈에 그냥 평화로워 보여 붙여진 것이니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천혜의 파라다이스’에 이처럼 식민주의의 딱지가 붙여져도 원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리얼리티로 받아들이고 만다. 그 뿐인가. 문화의 원형질은 산산조각처럼 부서졌다. 정체성 없는 서구화의 길을 걷는 것은 유럽인의 도래 이후 태평양의 섬들이 이미 겪었거나 여전히 겪고 있는 가슴아린 현실이다.
필자는 현재까지 59년의 인생을 살며 농경시대, 산업시대, 정보시대를 거쳐 다시 녹색시대의 진입에 놓여있다. 생애 중 16년은 산골의 농촌에서 살고 나머지 3년은 청주에서, 40년은 서울에서 사는 등 중·대도시에서 살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시골에서 살 때가 현재의 도회지 생활 보다 훨씬 행복했다. 물질적인 혜택은 좋아졌으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커져 마음이 편치 않다. 머리가 무거워지면 한 두달에 한번 꼴로 고향의 품으로 회귀, 자연의 산천과 지내며 마음을 달랜다. 원시는 인류의, 마음의 고향으로 야만이 아니라 현대인의 위안처이다.
<남태평양 바누아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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