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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술가 통신일보 고문 / 한재 신충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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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초기의 색 사용을 보면 색채 자체가 감각적 측면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주술적,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해 신성함을 나타내는 작용을 했다. 자연은 고대의 우리민족에게 있어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으로 경의와 신비의 대상으로 인식돼 인간은 이를 신성시하고 절대시하게 됐다. 이러한 자연관이 우리 민족의 우주관이 됐고 그러한 우주관이 바로 무속신앙, 즉 샤머니즘과 연결되어졌다.
신명의 예술과 놀이 문화를 좌우하는 한국인의 원초적 심성은 무교적 산물이다. 우리의 시나위와 산조, 판소리, 살풀이, 탈춤, 민화 등은 자연스러운 예술미가 한층 발현되는 분야이다. 특히 민화는 같은 소재와 주제를 담았으나 제멋대로이며 자연스럽다 못해 거치고 투박한 미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오방색의 밝은 미감으로 표출되는 민화의 낙천성은 한국 무교의 인생관에서 비롯된 사고방식에서 연유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무교의 믿음을 그려낸 무속화는 민족의 시조이자 고대 국가의 상징였던 단군과 삼국시대로부터 내려온 시조왕제, 조상제의 유풍에 따라 왕조의 군왕, 조국을 외적의 무력침공에서 지킨 장군들, 중앙 및 지방 관서의 고급 관원, 창부, 마부, 무당 등의 그림을 말한다.
자연계의 바탕이 되는 오방색은 한국인의 기본색이다. 우리말에 ‘오색이 찬란하다’라는 표현은 색을 총망하해 광채가 빛날 때 쓰이는 말이다. 이는 음양오행설에 근본을 둔 다섯 가지 순수하고 섞임이 없는 적색, 청색, 황색, 흑색, 백색을 기본 색으로 해 이 색들만을 빛깔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비슷한 경도에 위치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더라도 작은 반도 내에서 동서 혹은 남북의 기후차가 현저한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기후의 영향으로 우리 민족은 각 계절의 풍부한 색감을 경험하게 되고 많은 식물과 자연현상을 경험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국인이 사용한 색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풍토의 변화가 심하고 대기 중에 먼지가 많아 강렬한 원색계열의 채도가 높은 빨강이나 흑색 그리고 청색을 선호했다. 일본은 습기가 많아 간색계열의 색상이 발달했다. 이들과 달리 한국은 온대 기후에 안정된 산야로 구성돼 순한 색을 선호하고 저채도 고명도의 경향을 가진다. 특히 우리나라는 백색을 중심으로 한 단색계의 담백한 색조를 선호했다. 자연에 역행하지 않고 자연에 동화해 순리대로 사는 것을 옳게 믿어온 우리 민족의 백색에 대한 선호는 대단하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을 일컬어 ‘백의민족’이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 민족이 흰색을 청렴결백한 선비상으로 꼽아 신성한 색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흰옷을 선호한데서 나왔다. 또한 민속 상에 나타난 색채는 상적하청으로 적색과 청색이 같이 사용된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태극의 색, 청사초롱, 사주보, 결혼 때의 청사홍사, 쪽색의 이불 등에서 나타나는데 이것은 민족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어진 것이다.
오방색은 자연과의 일체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의식의 표현이다. 오방색을 중심으로 구성된 색동옷을 보면 음을 상징한다는 흑 대신에 분홍, 초록을 가미한 회색조이며 자연현상의 하나인 무지개색과 동일하다. 색동저고리는 무병장수의 의미인 건강과 화평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이유로 서민들도 아기의 돌과 명절 및 혼례 때에는 색동옷을 입혔다.
‘그대로’ 박생광(1904~1985년)은 ‘한국 전통 색채의 마술사’ 혹은 ‘민족 혼의 화가’라고 평가받는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그의 화두는 ‘전통성 회복’이었다. 일평생 화풍 역시 전통 본연의 혼을 쫓되 어떠한 형식이나 수법에 얽매이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재해석된 그만의 독자적인 표현방법은 ‘전통 한국미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자유로운 찬미’그 자체였다. 그의 일생에서 하이라이트는 말년의 10년이었다.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팔순, 1980년 전후에 보여준 박생광의 놀랍고 대담한 예술적 변신은 아직도 한국 현대미술사의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그의 나이 79세 되던 1982년『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704~787년)의 길을 따라 인도 성지순례와 평소 갈망하던 파리 여행까지 다녀온다. 여행을 계기로 그의 작품은 좀 더 깊이를 더한다. 불교적이면서도 영적인 교감 그리고 영혼성이 깃든 색채가 두드러진다. 그는 당시 “남은 생명의 등불을 초연한 자연으로서 전신(傅神)의 경지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흔히 박 화백의 작품은 ‘우리 눈에 쉽게 띄지는 않지만 우리와 가까이 있는 주제’를 주로 담고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다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가령 오랜 민속신앙의 무당굿을 비롯해 서민층 삶의 탈춤놀이, 해학적인 탈바가지, 불교적 장식미, 불상의 정신적 이미지, 십장생의 재해석 등이다.
이들 각 형상의 외곽마다 강렬한 붉은 선을 둘러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이는 특유의 평면성과 장식성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렇듯 원색조로 마무리한 채색법은 한국미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전통 오방색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1983년작 <나녀4>는 바로 그의 전성기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벌거벗은 두 여인의 요염한 포즈가 무척 흥미롭다. 울긋불긋 화려한 바탕색과 붉은 색 외곽선으로 따낸 인물형상 처리가 환상적인 대조를 이룬다. 마치 백옥처럼 흰 여인의 풍만한 몸매를 과시하려는 듯하다.
박 화백은 1983년 어록에 “최근 내가 의식적으로 한국적 시리즈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혹자는 구태의연하다고 하나, 나는 그것이 바로 나의 진실된 현대화라고 생각한다”고 적고 있다. 이때부터 ‘그대로’라는 한글 호를 사용한다. 비록 일본에서 화가의 길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그 시대에 말살됐던 한민족의 영혼을 불러냈다. 신장 155㎝의 작은 거인 박생광. 그는 잠들었던 ‘우리다운 정체성’을 작품으로 일깨워준 진정한 ‘화단의 큰 무당’이었다.
오방색(五方色)은 자연의 색으로 한국의 전통 색상이다. 오방정색이라고도 하며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5가지 색을 말한다. 음과 양의 기운이 생겨나 하늘과 땅이 되고 다시 음양의 두 기운이 목(木)ㆍ화(火)ㆍ토(土)ㆍ금(金)ㆍ수(水)의 오행을 생성했다는 음양오행사상을 기초로 한다. 오행에는 오색이 따르고 방위가 따르는데 중앙과 사방을 기본으로 삼아 황은 중앙, 청은 동, 백은 서, 적은 남, 흑은 북을 뜻한다. 또 청과 황의 간색에는 녹(綠), 청과 백의 간색에는 벽(碧), 적과 백의 간색에는 홍(紅), 흑과 적의 간색에는 자(紫), 흑과 황의 간색에는 유황(硫黃) 색이 있어 이들을 오간색 또는 오방잡색이라고 한다.
황은 오행 가운데 토에 해당하며 우주의 중심이라 해 가장 고귀한 색으로 취급돼 임금의 옷을 만들었다. 청은 오행 가운데 목에 해당하며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색으로 쓰였다. 백은 오행 가운데 금에 해당하며 결백과 진실, 삶, 순결 등을 뜻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흰 옷을 즐겨 입었다. 적은 오행 가운데 화에 해당하며 생성과 창조, 정열과 애정, 적극성을 뜻해 가장 강한 벽사의 빛깔로 쓰였다. 흑은 오행 가운데 수에 해당하며 인간의 지혜를 관장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음양오행사상에 기반해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음귀를 몰아내기 위해 혼례 때 신부가 연지곤지를 바르는 것, 나쁜 기운을 막고 무병장수를 기원해 돌이나 명절에 어린아이에게 색동저고리를 입히는 것, 간장 항아리에 붉은 고추를 끼워 금줄을 두르는 것, 잔치상의 국수에 올리는 오색 고명, 붉은 빛이 나는 황토로 집을 짓거나 신년에 붉은 부적을 그려 붙이는 것, 궁궐․사찰 등의 단청, 고구려의 고분벽화나 조각보 등의 공예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재자연사상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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