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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충우 칼럼] 한반도의 남방계와 북방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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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12.10  14: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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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술가 통신일보 고문 / 한재 신충우  
 
미국 흑인 소설가 알렉스 헤일리(1921~1992년)가 1976년에 발표한 소설『뿌리』는 6대에 걸친 흑인 노예 집안의 내력을 적나라하게 그려 전 세계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1767년 아프리카의 감비아에서 노예로 팔려 신대륙(미국)으로 온 쿤타 킨테는 작가의 7대조 할아버지다. 조상의 고향 아프리카 등 10여 년에 걸친 현지답사로 기록했기에 감동을 더한다. ‘반쪽 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들의 선조와 달리 그의 흑인 아버지는 노예가 아닌 케냐 출신의 유학생이었다.

민족은 일정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친 공동생활로 무리 지어진 인간집단이다. 언어·풍습·종교·정치·경제활동 등에 있어 공속의식(共屬意識)을 지닌 문화공동체가 민족이다. 민족구성의 객관적 요인을 공유하는 자는 원칙적으로는 같은 심리 ·정신 상태를 갖는다. 하지만 이것이 구성원 사이에서 동료로서의 ‘우리의식, 공속의식’으로 의지할 때 비로소 민족이 형성된다. 이것이 민족의식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사는 종족과 민족의 갈등으로 박해와 멸시, 오만과 편견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가 ‘한아버지’의 후손이라면 유전형이 모두 같아야 한다. 나의 유전형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았고 우리 부모의 유전형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유전혈통을 찾아 올라가면 남성의 Y염색체는 6만년 전에서, 모계를 통해서만 전해지는 미토콘드리아 DNA는 16만년 전에서 줄기를 만난다. 이들을 세칭 ‘DNA 아담’,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 부른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치면 아프리카에서 2,000대 전의 할아버지가 일가(약 200명으로 추정)를 이끌고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전 세계로 퍼져 지금 세상에 사는 68억 명(2009년 12월 현재)의 후손을 만들었다는 시나리오다. 순수 유전학적 시각에서 보면 사해의 모든 인류는 형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다른가? 과거 6만 년 동안 살아온 환경이 달랐고 그 지역에 가장 잘 적응한 체질을 가진 사람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세계 각 지역 사람의 Y염색체 유전형을 조사하면 남자의 이동을 추적할 수 있다. 몽골과 만주로부터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동아시아인은 주로 O형인데 한국인 70%, 중국인 75%, 대만인 95%, 일본인의 약 절반이 O형이다. 중국인의 나머지 25%는 O형에 가까운 유전형을 갖는다. 한국과 일본에는 유전적으로 거리가 먼 C형과 D형이 많다. O형과 그에 가까운 형은 시베리아를 거쳐 들어왔고 C형과 D형은 말레이 반도를 포함해 남방 해안 루트를 경유했다고 추정된다.
유라시아 지역에 사는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보면 알타이 산맥 서쪽 거의 모든 사람의 유전형은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인의 유전형과 뿌리부터 다르다. 동북아시아 남자는 Y염색체 O형이 압도적 주류이며 C형과 D형이 적다. 여자는 대부분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형 8가지 중 하나를 갖고 있다. 이 점에서 중국 북부, 한국, 일본 사람은 모두가 같다.

10여년 전 기독교성서에 나오는 인류의 아담과 이브는 백인종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미국의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서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는데 흑인종으로 결론이 났다. 내용인즉, 멜라닌이라는 피부색소의 유전적 DNA 염기 조합을 인류의 조상세대까지 지속적으로 계산했다고 한다.
우리 한국인도 마찬가지로 흑인에서 황인이 됐다. 지구의 위도상의 특징상 저위도(적도)지방 사람들은 기후적 특징상 많은 태양빛에 노출돼 피부색이 검어지고 고위도 사람들은 태양빛이 충분히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에 비타민D를 생성하기 위해 피부가 희어진다. 황색은 그 중간의 경우이다. 인종은 우수성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자신들이 살고 있던 환경에 적응한 것이지 우열관계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현 인류는 약 20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이브’라는 한 여성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아프리카 가설’과 이와는 달리 적어도 10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호모 에렉투스가 각 지역에 도착한 후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진화됐다는 ‘다지역 기원설’이 그것이다.

1987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알란 윌슨은 세계 각지 147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조사해 계통 수를 그린 결과, 현대 인류의 조상은 단 한 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두개골 화석 비교와 분자유전학적 방법을 동원해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현대 인류가 14만∼29만년 전에 동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출현한 후 이 후손들이 세계 각 지역으로 이주, 모든 인류의 부모가 됐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이를 ‘이브 가설 또는 아프리카 가설’(Out of Africa theory)이라고 부른다.

반면 미국의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커얼리튼 쿤은 1962년 발간한『인종의 기원에서』란 책에서 ‘다지역 기원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전 세계의 인류가 모두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것은 아니다. 세계 인류의 기원으로 분류될 수 있는 첫 번째 집단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각기 다른 시대에 독자적으로 진화돼 온 영장류, 즉 호모 에렉투스의 여러 종류의 후손들이다. 따라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현생 인류의 조상)는 결코 우리의 공통적인 조상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가설은 호모 에렉투스인 ‘북경 원인’ 등의 후손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는 신생대 제4기 홍적세에 살던 멸종된 화석인류로 170만 년 전부터 10만 년 전까지 아프리카, 아시아, 시베리아, 인도네시아 등에 걸쳐 생존했다. 대략 150만 년 전 이전에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아시아까지 진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한 구대륙 전역에 걸쳐 분포하며 아프리카에서는 40만 년 전, 극동아시아에서는 20만 년 전, 인도네시아 제도에서는 10만 년 전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은 1891년 뒤부아에 의해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서 처음 발견된 후 세계 각처에서 발견됐다. 한국에서도 1930년대 충북 단양군 금굴에서 호모 에렉투스로 추정되는 남녀의 뼈화석이 발견됐으나 일제 때 유실하고 말았다.

상기의 자료를 토대로 보면 인류의 시원은 아프리카이다. 각각 별개로 존재해온 역사학와 생물학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서 통합개념으로 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학문 흐름이다. 한국인의 조상은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 한국인의 주류 혈통은 아프리카(흑인)→ 아시아(황인)→ 알타이어족→ 몽골리안→ 퉁구스계로 이어지는 것이 지금까지의 주류학설이었다. 그러나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아시아 10개국 과학자의 공동 연구로 이 가설은 힘을 잃게 됐다.

아시아 73개 인종의 유전체 DNA를 비교한 결과 동북 아시아인은 대부분 동남아시아를 거쳐왔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동남 아시아 해안선을 따라 이동한 인류의 한 무리는 오스트레일리아 인근까지, 또 한 무리는 중국과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유입됐다는 가설이 성립된다. 또 한국과 중국, 일본인 가운데 한국인과 일본인이 유전적으로 가장 유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동남 아시아인의 단일 이주설을 뒷받침하는 이 연구결과는 2009년 12월 11일 <사이언스>지에 발표됐다.

이 연구에 의하면 ‘남아시아나 동북아시아인들은 동남아시아인들의 부분집합이다.’ 16만년전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류는 7만년전에 인도에 도착하고 이 가운데 일부가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에 정착한다. 이중에 몇몇 그룹이 북쪽으로 이주해 원주민들과 합류했고 지금의 우리 조상인 알타이족 등 5개 인족으로 분류됐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다. 이는 남방과 중앙아시아 두 곳을 통해 아시아로 인류가 유입됐다는 기존의 주류학설이 아닌 남아시아 해안가를 통한 단일이주설이 더 옳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흔히 아시안인을 분류하는 5인족 은 오스트로네시안(엷은 초록색), 오스트로아시안(붉은색), 타이카다이(진한 파랑색), 후모민(엷은파랑색), 그리고 알타이족(노랑색)이다. 이번 연구는 각 나라의 팀들이 해당 인족의 게놈DNA를 미국 Affimetrix사의 SNPchip을 공통으로 사용해 같은 방법으로 실험한 뒤 데이터를 공동으로 분석해 얻은 결과다.

알타이족은 알타이 어족을 구성하는 여러 민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튀르크 족, 몽골 족, 퉁구스 족, 만주족 등이 이에 속한다. 공통된 특징으로 초원에서의 유목 문화를 들 수 있으나 일부 민족은 농업·어업 생활을 영위하기도 한다. 알타이어는 주로 중앙아시아와 북아시아·러시아(북카프카스와 중부 러시아)에 살고 있는 민족들의 언어가 여기에 속한다. 학자들에 따라 알타이어족에 한국어나 일본어족을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알타이는 ‘금으로 된 산’이라는 뜻으로 중국어로는 진산[金山(금산)]이라고 한다. 다른 종족에게는 없는 독특한 언어 체계 ‘~을 ~는 ~가’라고 하는 접속사를 가지고 있다.

동북아인을 상징하는 몽골리안은 몽골지방의 추운 자연환경에 따라 눈이 작고 가늘며, 광대뼈가 나오고, 속쌍꺼풀이 있는 독특한 얼굴형을 가지게 된다. 어릴 적 엉덩이에 푸른 반점이 있는 것과 함께 이것이 몽골리안의 특징이다. 얼어붙은 쿠릴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로 넘어간 인디언도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이다.
기존의 주류학설에 의하면 우리 고대 조상은 크게 남방계와 북방계로 나눠져 한반도에 진입한다.

한국인의 주류 북방계는 간빙기가 끝날 무렵 남하를 시작, 지금의 중국 북부와 동부 그리고 한반도로 진입했는데 이 시기에 이미 한반도에 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남방계다. 동남아시아를 통해 들어온 이들이 한반도 남쪽에 세운 나라가 가야, 마한, 탐라, 포상팔국이다. 남방계의 네모난 주거 공간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던 10세기 까지 충청도 산간지방에 존재하다 역사에서 사라졌다.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쌀도 이 당시 남방계를 통해 들어온 쌀로 자포이카의 일종이다. 쌀의 수입으로 농업이 발전함으로 신분제가 생기고 군장 국가가 형성됐다. 이 시기가 7,000년 전이다. 성황당이나 장승은 이 시기 소국가간의 경계였으나 중앙집권국가가 등장한 후기에는 마을간의 경계가 됐다.

한편 북방의 고대 조상은 분화하기 시작, 지금의 중국 영토로 이주해 황하 이북과 산동에 정착하고 거기서 국가를 형성한다. 요하문명은 이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한반도의 바로 위의 영토로 이주한 고대 조상은 고조선을 성립하게 된다. 북방 퉁구스계의 일족이다. 그 후 출현하는 부여, 고구려, 백제(한강유역), 말갈족, 여진족, 거란족, 만주족 등도 북방 퉁구스계다.

이 당시의 언어는 지금의 언어체계와 달랐다. 현재의 언어 체계는 남방계와 완전 혼잡이 이뤄지는 5세기 이후 비로소 완성됐다. 그러나 이 시기 우리 언어의 특성중 하나인 복잡한 언어체계가 만들어 지는데 일본이나 몽골, 만주어에 없는 존댓말이나 하댓말이 이 시기에 형성됐다(신라 주도의 통일로 가야 특색의 남방성 언어의 특징은 사라지고, 백제에게 점령된 마한의 언어적 체계는 고려 통일시 우리 언어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됨).

북방의 대규모 남방 침입이 개시된 기원전 3세기 신라가 형성되고 북방의 국가 체계를 받아 들여 철기 무기로 무장한 가야와 마한 54국이 등장한다. 남방의 가야와 북방의 고구려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무장력과 문화색 그리고 발굴된 유골을 조사하면 생김새면에서 많이 틀리다. 북방의 갑옷을 보면 어린갑(쇠비늘 갑옷)이 대표적이고 가야의 갑옷은 고대 그리스인과 같은 판금 갑옷이다. 가야가 해양민족이라는 증거이다. 바다의 소금끼 많은 바람에 녹슨 것을 간편하게 닦기 좋게 하기 위해 판금 갑옷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부여를 통해 고조선을 이어받은 북방퉁구스계 고구려의 정통은 발해를 거쳐 고려로 이어진다.

이와 달리 신라는 원래 토착민들(진한)이 있고 그 지배층으로 남부러시아 쪽의 스키타이 계통이 중국이나 동해안을 거처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무덤 황남대총(남동 제98호분)이 그 근거이다. 고구려와 백제에 없는 이런 돌무지 덧널무덤은 만주 시베리아 지방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어 연관성이 있다. 역사가들은 이 황남대총이 만들어진 시대부터 스키타이에서 이주해온 종족이 신라에서 지배층으로 입지를 굳힌 시기라고 보고 있다.

신라의 왕조는 중국을 거쳐 한반도 남쪽으로 이주해 온 흉노족의 후예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796년(조선 정조 20년) 경주에서 발견된 신라의 30대 문무왕(626~681년) 비문에는 ‘투후제천지윤(秺侯祭天之胤)’이란 구절이 있는데 문무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투후의 후예라는 뜻이다. 투후는 한나라 7대 황제 무제(기원전 141~87년) 때 흉노족 김일제(金日磾)가 받은 제후의 명칭으로 이는 곧 문무왕이 김일제의 후예라고 문무왕 비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제의 묘는 현재 중국 서안에서 40㎞ 떨어진 섬서성 홍평현 남위향 도상촌에 한무제가 묻혀있는 무능의 들머리에 있다.

김일제는 우리가 스키타이로 알고 있는 흉노족 휴도왕의 태자였다. 전쟁에 패해 잡혀간 그의 일대기는『한서』<김일제전>에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김일제의 5세인 성(星)이 문무왕의 비문에 나오는 성한왕(星漢王)으로, 경주로 이주해와 신라김씨의 시조 김알지(金閼智)가 된 것이다.
박혁거세는 토착세력이지만 석탈해(남방)나 김알지(북방)는 외래세력이다. 김알지의 김은 원래 금(Gold)을 뜻하는데 이름인 알지(閼智)도 몽골-투르크어계에서 금을 의미한다. 즉 알타이 언어의 알트, 알튼, 알타이가 아르치, 알지로 변한 것으로 김알지는 금금(Gold Gold)을 뜻한다. 김씨왕계가 수도를 금성(金城)이라고 한 것도 북방기마민족이라면 연상되는 제천금인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고아시아인과 별도로 중국인이 한반도에 이주해 온 것은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사람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한 중국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한반도 남부로 건너온 진의 유민들이 진한과 변한을 세웠다는 것이다.『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너머북스)의 저자 이희근은 “진한의 노인들이 말하기를 (자신들은) 진나라의 망명한 사람들로서 고역(苦役)을 피하여 한국(마한)에 오자 마한이 그들의 동쪽 지역을 분할해 주었다고 한다”는『후한서』와『삼국지』<한전>의 구절을 예를 든다. 중국의 진(秦) 한(漢) 교체기에도 피란민이 고조선으로 몰려왔다.『후한서』<동이열전>에는 “한나라 초기 대혼란기에 연(燕) 제(齊) 조(趙)나라 사람으로서 그(고조선) 지역으로 피란 간 사람이 수만 명이나 됐다”고 기록돼 있다. 이희근은 이 시기 연나라 사람 위만이 고조선으로 이끌고 온 중국인을 규합해 건국한 나라가 위만조선이라고 말한다. 위만이 고조선 준왕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해 가는 과정이 『삼국지』<동이전>에 서술돼 있다.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중국 한족을 물리치고 중원을 점령했던 금나라의 여진족(훗날 만주족)이 신라인의 후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금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금사>(金史)에는 “금태조가 고려에서 건너온 함보를 비롯한 3형제의 후손이다”는 대목이 나온다. 또 금을 계승한 청나라의 건륭제 때 집필된 <흠정만루원류고>에는 금나라의 명칭이 신라 김(金)씨에서 비롯됐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청나라 황실의 만주어성 ‘아이신줴뤄’ 중 씨족을 가리키는 아이신은 금(金)을 뜻한다. 이는 아이신줴뤄를 한자로 가차한 애신각라(愛新覺羅)에 “신라(新羅)를 사랑하고, 기억하자”는 뜻이 담겼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만주에 살던 이들은 중국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발원한 한족과는 달리 한반도에 살던 이들과 깊은 혈연관계였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나아가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웠던 여진족과 만주족의 역사를 한국사에 새로 편입시켜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인이 우리 민족의 근거지인 한반도에서 계속 살아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단일민족’이라고 배워왔다. 실제 KIST유전공학센터가 한국인 40여명의 인슐린 유전자를 연구 분석한 결과 ‘한국인의 혈통은 유전자적으로 80% 이상이 공통될 정도로 순수하며 유럽인의 유전자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한국인의 유전학적 기원 역시 순수한 의미에서 하나는 아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한국인의 유전학적인 기원이 북방계와 남방계로 구성돼 있다고 보고 있다. 염색체의 유전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가 섞여 새로운 형질을 만들어내지만 Y염색체와 미토콘드리아라는 두 염색체는 뒤섞임 없이 한쪽 부모한테서 그대로 유전되는 특성을 지닌다. Y염색체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만 유전되며 미토콘드리아는 반대로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된다. 이 때문에 미토콘드리아DNA를 ‘이브의 유전자’, Y염색체를 ‘아담의 유전자’라 부른다. 때문에 학자들은 이 두 가지 유전자를 분석해 우리 민족의 기원을 파악하고 있다.

단국대 김욱 교수는 2003년 Y염색체를 이용한 연구결과에 근거해 우리 민족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누고 70~80%는 북방계, 20~30%는 남방계이며 나머지는 유럽인 등 다른 그룹이 섞여 있다고 발표했다. 2006년에는 모계유전을 하는 미토콘드리아 DNA도 분석했다. 한국인은 3명 가운데 1명꼴로 몽골과 중국 중북부의 동북아시아에 많이 분포하는 하플로그룹D 계통이 가장 많았고 전체적으로 한국인의 60%가량이 북방계로, 40%가량이 남방계로 분류됐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 경성제대 해부학연구실에서는 한국인 약 2만명을 대상으로 유전적 기원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 조사기록 역시 ‘한국인은 남쪽으로부터 이주해온 남방계와 북쪽으로부터 이주해온 기마민족인 북방계가 섞이거나 혼혈됐다’고 적고 있다. 이 조사기록은 그 증거로 북쪽지방, 북한 사람들의 체형과 남한 사람들의 체형이 상당히 다른 점을 들었다.

이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추정하면 한국인 집단은 적어도 두 가지 경로 이상의 다양한 민족 집단이 혼합과정을 겪으면서 형성됐으며 유전적으로 볼 때는 하나의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 ‘단일민족’이라고 말하지만 단일민족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유전적 동질성을 획득했다는 의미이지 한국인의 기원이 하나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민족은 북방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모두 몽골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다. 김욱 교수는 “한국인의 Y염색체를 분석한 결과 한국 남자의 유전적 계통이 그룹C, 그룹D, 그룹O의 세 가지 형태를 보이는데 몽골·시베리아인은 그룹C가 40~50%를 차지하는 반면 우리 민족은 15%에 불과해 우리가 모두 몽골 쪽에서 내려왔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전자는 그 집단 구성원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점점 많아지지만 10% 이하의 유전자는 300년 정도가 지나면 거의 사라진다고 한다. 유전자 결합의 확률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주류를 북방계와 남방계로 분류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우리 민족이 유전적으로 단일민족은 아니지만 두 종류(북방계와 남방계)만의 민족 집단으로 구성돼 있는 경우도 세계에서 매우 드물다. 1980년대 초에 프랑스에서 ‘누가 진짜 프랑스인인가’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정통 프랑스인은 부모와 조부모, 즉 3대가 모두 프랑스인인 경우를 의미했다. 그런데 호구 조사는 전 유럽인들을 놀라게 했다. 프랑스 정부가 호구 조사를 통해 프랑스인을 가린 결과, 이 기준에 맞는 프랑스인들은 겨우 20%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프랑스의 경우와 비교하면 단 두 갈래의 유전적 흐름만 갖고 있는 한민족은 세계에서도 드문 매우 집약적인 혈통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얼굴형은 시차를 두고 이주해 온 한반도 주변 종족의 유입에 따른 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북방계형은 시베리아에서 빙하기를 지내고 빙하기 말인 1만년 전부터 산지와 내륙을 통해 한반도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한반도에 살고 있던 고아시아족과 남방계형을 제외한 퉁구스계, 알타이계, 중국계, 중국계와 퉁구스계의 중간형을 모두 북방계형에 넣을 수 있다. 구석기인들이 1만4,000년 전까지 한반도에 살다가 물러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북방에서 내려왔다는 학설이 이른바 ‘북방전래설’이다.

토종 고아시아인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이미 구석기시대 적으나마 이 땅에 유전자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1983년 충북 청원에서 발굴된 4만년 전 5세 ‘흥수아이’도 이에 해당한다. 경기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는 약 20만년전 고인류가 살고 있었으며 한반도에서 이미 70곳이 넘는 구석기 유적이 확인됐다. 북한에서는 1973년 평남 덕천군 승리산에서 ‘덕천인’(10만~4만년 전)과 ‘승리산인’(4만~3만년 전)이 잇달아 발견됐다. 1977년엔 평양시 대현동에서 력포인이, 1980년에는 평양 검은모루 동굴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의 인류화석(룡곡인)과 석기가 확인됐다. 또한 같은 해 평양 만달리에서는 2만년전의 ‘만달인’ 화석이 나왔다. 그러나 1만~6,000년전의 한반도는 이 기간의 유물이 발견되지 않고 있어 공백상태이다. 전문가들은 해수면의 상승으로 이 기간의 유물이 바닷속에 잠겨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남방계형은 동남아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이 있는 순다열도에서 1만2,000년 전부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수차에 걸쳐 한반도에 진입했다. 이들은 주로 한반도의 서남해안과 강 상류에 터를 잡고 패총을 만든 신석기문화의 주인공들이다. 패총에서 인골이 발굴되고 있다. 남방계형은 네모진 얼굴에 안면의 요철이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이마는 가로가 넓고, 세로가 좁으며, 눈썹은 진하고 눈이 크다. 쌍꺼풀이 있는 경우가 많고 입술도 두껍다. 이들이 평균적인 한국인 얼굴이 아닌 것은 약 20% 정도로 수가 적기 때문이다. 2009년 경남 창녕 송현동의 제15호 가야 고분에서 발굴된 1,500년 전의 16세 소녀의 유골을 복원한 결과, 현대인보다는 둥그렇고 다소 평평한 얼굴 모습이었다.

영화배우 장동건의 얼굴이 전체적으로 서구형 남방계 몽골리안이다. 한반도에 가장 먼저 와 산 고아시아인도 북방계와 달리 광대뼈가 크고 눈이 크다. 이런 형태의 얼굴은 충북 등 산간지역에서 볼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얼굴의 여러 종족이 수만 년 동안 섞이며 형성된 것이 오늘날의 한국인이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자주 듣던 표현 중 하나가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말이다. 일천 번이 넘는 외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단일민족의 순수 혈통을 지켜왔다는 사실에 대해 한국인들은 모종의 자긍심을 갖고 있다. 동시에 이것은 한국인들의 배타성을 부채질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단일민족’이라는 표현이 2007년 발행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 빠졌다. 현행 고등학교 <국사> 어디를 보아도 ‘단일민족’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 머리말이나 앞부분에도 ‘우리 민족’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할 뿐이다.
이처럼 지난 수십 년간 국민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주입한 ‘단일민족’이라는 표현을 정부가 국사 교과서에서 삭제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행 국사교과서 발행에 연구진으로 참여한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국사편찬위원회가 단일민족 표현을 뺀 이유는 바로 고구려사 때문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의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 고구려인들뿐만 아니라 말갈족 등 여러 민족(혹은 종족)을 포괄한 대제국인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명제를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단일민족을 고수하게 되면 ‘고구려사=한국사’라는 주장을 밀고 나가기 힘들다.
상기와 같이 고구려·백제는 한 계통이라는 게 인정되지만 신라·가야의 경우에는 고구려·백제와 한 계통이라는 것이 명확히 인정되지 않는다.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자면 상호 별개의 혈통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한 일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다. 시베리아를 거쳐 들어온 북방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동안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믿은 것은 다분히 정치적 선전의 산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2007년 국사교과서에서 ‘단일민족’ 표현을 삭제한 것은 비록 때 늦은 감은 있지만 바람직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우리민족이 단일민족이란 신화는 만들어진 역사이다. 한반도에서 이민족들과 공존한 역사는 통념과 달리 매우 오래됐다. 민족도 종족도 애당초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남한과 북한을 하나의 민족이라고 보지만 서로의 유기적 관계가 결여되는 분단 상황이 2~3세대에 걸쳐 더 연장되면 ‘하나의 민족’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언어·문화적으로도 서로 철저히 이질화될 수 있다.
우리 인류가 아프리카를 빠져나와 지구 여러 곳에 흩어져 독립된 개체군(Population)으로 살다가 다시금 하나의 거대한 개체군으로 묶이고 있다. 이 같은 피 섞임은 각각의 개체군에는 당장 새로운 유전적 변이를 제공하지만 인류 전체를 놓고 보면 그동안 개별적으로 구축해온 변이의 다양성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도대체 우리가 어떤 모습의 ‘신인류’로 변화할지 정말 궁금하다.

<단재사관연구소장 신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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