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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충우 칼럼] 生死의 臨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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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10.26  1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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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술가 통신일보 고문 / 한재 신충우  
 
숙연해 지는 공간이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조우하는 묘지는 산 자들에게 삶과 인생과 죽음에 대해 사색과 사유하게 한다. 죽음 앞에 빈부귀천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깊이와 느낌은 살아온 인생행로 만큼이나 다를 것이다. 인생은 삶 속에서 바라보면 오리무중이나 생의 끝이자 반대편 죽음을 통해 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비교적 선명하게 보인다.
남한강 상류 천왕고원의 충북 청원군 미원면 기암리 텃이마에 소재한 신홍권가 자연묘지이다. 6대의 영혼들이 함께하는 필자의 가족묘지이다. 생사를 연구하는 저술가로서 내 가묘도 이 곳에 있다.

가수 겸 화가 조영남도 ‘유쾌한 장례식’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는 2009년 7월 21일 서울 청담동 서울 C.T 갤러리에서 열린 <요셉 보이스와 영남 보이스 전> 오프닝 행사에서 자신의 유서를 공개하고, 장례 퍼포먼스를 펼쳤다. 조영남은 “백남준도 해보지 못한 퍼포먼스다”며 “백남준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요셉 보이스를 만나러 간다는 의미에서 이런 퍼포먼스를 준비했다”고 언론은 전한다.

자연묘지는 자연파괴적인 봉분묘지와 친환경적인 자연장의 중간 형태로 산 자와 죽은 자가 조우하는 곳이다. 즉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이다. 이념을 달리하는 남북이 조우하는 판문점과 같은 곳이다.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묘지에, 산 자들의 정원개념을 도입한 자연과 인간 친화적인 공간이 바로 자연묘지이다. 나무 밑에 유골을 안장하는 유럽식의 수목장보다는 미국식의 이 자연장이 우리 정성에 더 잘 어울린다. 죽은 자의 안식처이지만 후손들에게 존재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묘지에는 한낮에도 밤중처럼 적막감이 감돈다. 앞쪽으로 딱트인 텃이마 들이 보이고 뒤로 울창한 인경산 숲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하는 사유는 그 적막 속에 호젓이 나래를 펼쳐 죽음을 통해 나를 끝없이 성찰하게 한다. 가까운 현실부터 먼 미래, 아름다운 꿈, 그리고 땅 끝과 내세, 거기서 이뤄 질 것에 대해 사색하게 하고 다시 생각은 안으로 내 가슴 깊이 덮어둔 한 자락 미해결 골짜기를 찾아 파고들게 하는 등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 사유 중 사람에 대한 존중심은 사람의 몸에 대한 존중심을 수반하고 그런 존중심은 사람의 시체로까지 확대된다. 그래서 사람의 시체를 소나 돼지고기 처럼 식도락을 위해 정육점에 매달아 놓고 팔고 먹거나 다른 동식물처럼 통조림을 만들어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것은 그 존중심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망자의 장기를 이용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고 비행기 추락사고의 생존자들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른 극단적인 경우에 먼저 죽은 사람들을 먹는 것이 도덕적으로 용납되는 것과도 다른 차원이다. 엽기적인 이런 의식에 아무리 그럴듯한 정당성이 부여되더라고 혐오감을 불러 일으킬 것이고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의식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 그런 사회가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이것은 도덕적 상대주의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존경은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 데본 지역의 동굴에서 발견된 뼛조각에서 고대인들의 식인 습관을 시사하는 흔적들이 발견됐다고 BBC 뉴스가 2009년 8월 보도했다. 옥스퍼드 대학 연구진은 19세기 말 켄츠 동굴에서 발견돼 토키 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9천년 전의 뼛조각에서 사체 해체 흔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 뼈가 당시 이 지역에 살았던 영국인들이 복잡한 매장 의식을 치렀으며 식인 습관이 있었을 가능성도 시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묘지에는 오후 2, 3시쯤이면 그늘이 들어 잔디에 앉아 사색하기 좋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묻힐 가묘의 잔디에 좌부좌를 하고 앉아 사색을 한다. 바람도 양쪽 골짜기에서 제법 불어 온다. 이와 달리 제초 작업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돼 아침부터 하는데 고독 속에서 존재를 찾게한다. 뽑혀도 한결같이 돋아나고 서로 엉켜 붙어 스스로 비단결 같은 초록을 이루는 잡초의 생리를 통해 인간에게 삶의 의지를 북돋아 준다. 싱싱하면 싱싱한 대로 조촐하면 조촐한 대로 저마다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풀이나 꽃일망정 그 하나하나의 모양 안에 저마다의 완성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생명의 고귀함이다.

인생은 평생을 통해 배우게 되고 뭔가 인생을 깨우칠만하면 죽음이 찾아온다. 필자가 생명과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도 학문적인 이유 외에 이런 의미가 있다. 생명은 죽음을 먹고 산다. 인간은 모체를 통해 자연에서 왔다가 죽음을 통해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 다른 생명체의 영양분이 된다. 죽음은 자연으로의 귀환이며 생사는 계속되는 자연의 순환과정이다.

우리의 마음 내부와 외부에는 새로운 세상이 존재한다. 그 세상은 본인이 발견해야 하나 두려움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이를 가로 막는다. 두려움이란 ‘실제처럼 보이는 가짜 증거’이다. 과거의 경험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미래의 두려움의 원인이 된다. 두려움의 근원은 ‘죽음’으로 생명의 상실이나 죽음 앞에 서면 오히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삶에 초연,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죽음은 현재이고 두려움은 과거와 미래에 연관돼 있는 것이다. 죽음에는 과거와 미래가 없고 현재만이 존재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아니다.

반드시 하루만 살고 죽지는 않지만 대체로 하루나 이틀 정도 생을 유지한다. 생명이 지극히 짧은 날벌레 하루살이의 수명이다. 하지만 태어나는 과정은 의외로 길어 애벌레는 1, 2년 정도 살아야 비로소 성충이 된다. 그렇게 탄생한 하루살이는 입이 퇴화해 체내에 저장한 에너지만으로 한 살이를 완성한다. 생애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짝짓기이다. 주어진 에너지를 활용해 암수가 생명의 증식에 기여하고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단 하루의 삶으로 생명체의 본분을 다하니 참으로 군더더기 없는 생애가 아닐 수 없다. 하루살이에게 주어진 하루는 물리적인 시간 개념이 아니라 인생의 생애와 견주는 비유의 단위로 심화된다. 하루가 누적돼 인생이 되고 인생 전체가 하루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수평으로 누워 자고 아침이 되면 수직으로 일어나 활동하고 밤이 되면 다시 수평으로 누워 충전한다. 그렇게 동일한 하루하루가 평생 지속됨으로써 인생 전체가 하루의 패턴을 얻게 된다. 아침에 태어나 수평으로 누워 있던 아이가 기고 걷는 걸 배워 한나절이면 수직으로 활용하는 성인이 되고 황혼 무렵이면 인생에 지쳐 허리가 휘고 등이 굽는다. 그리해 수명이 다하는 인생의 밤이 찾아오면 수평으로 누워 영면한다. 하루살이라는 말은 긍정보다는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미래를 대비하지 않고 오직 현재만을 즐기려는 즉흥적인 삶을 경계하고 지적할 때 부정적인 비유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불멸을 흉내 내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벗어던지고 바라볼 때 하루살이는 너무나도 명징한 인생살이의 교훈이다. 환경 파괴와 생태계 오염도 그 결과이다. 자연은 먹을 만큼만 사냥하거나 저장한다.

우리가 죽음을 통해 찾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지혜이다. 곱게 산다는 것! 곱게 죽는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삶과 죽음에 임해야할 마지막 자세이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에야 살기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게 된다. 죽음은 삶의 동반자다. 죽음이란 본질적으로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느끼는 공포’이며 ‘경험하는 순간 증언할 수 없는 공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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